아이에게 좋은 그림책 고르는 요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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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어린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책'이락서 부모들이 선정에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비만, 고르는 요령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른들도 읽어서 감동이 오는 책이어야 어린이들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어린이들은 미숙하니깐 알록달록한 그림만을 좋아하고, 철학적 내용은 되도록 배제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짝짜꿍식 동화주의'로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 어린이도 무거운 철학을 좋아한다?=어린이도 스트레스나 감정의 기복을 겪고, 따라서 세상에 대해 사실적으로 접근한 책이 오히려 설득력이 높다는 점은 이오덕씨 등이 천명한 바다. 또 2001년 유네스코 아동.청소년 문학상에 선정된 그림책 〈전쟁〉(비룡소, 4월7일 리뷰기사 참조) 의 작가 아나이스 보즐라드가 지난주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열린 수상식에 앞서 가진 인터뷰도 이같은 생각이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전쟁〉의 주제가 다소 철학적이어서 아이들에게 버겁지 않겠느냐는 질문도 받는데 나는 아이들도 어른과 똑같은 철학적 질문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표현력이 부족할 뿐이다. 대신 이러한 주제를 표현할 때 얼마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잘 녹아나도록 하느냐가 중요하다. "

그런 점에서 최근 나온 두 권의 책 〈내 나무 아래에서〉와〈수호의 하얀 말〉은 그림책의 모범이 될 만하다. 번역서라서 다소 아쉽지만, 아직은 국내 출판계가 외국의 좋은 그림책을 학습하는 단계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곁눈질' 한다고 흠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이 책들은 그림과 글 모두 지나치게 산문적이거나 풀어지지 않은 채 싱싱하게 살아있는 시적인 운율(〈내 나무 아래에서〉) , 동북아의 신화와 민담의 세계를 장려한 그림으로 바꿔 놓은 역량(〈수호의 하얀 말〉) 등이 놀랍다. 일반적으로 그림동화에서 스토리와 삽화의 관계는 '두 다리로 걷는 걸음' 과 같은데, 완성도가 뛰어난 글과 그림의 조화는 두 권의 공통점이다.

◇ 이것이 좋은 글과 그림이다=〈내 나무 아래에서〉의 경우 표지부터 상식 밖이다. 거의 시커멓다 싶은 무거운 톤의 짙은 녹색이 시야를 움켜쥔다.

그러면서도 극도로 절제된 간명한 그림들은 힘도 있고, 동시에 운율로 가득 차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행갈이만 하지 않았지 시와 다름없다. 이렇게 시작된다.

"고요한 아침, 나뭇가지에 하얀 눈이 쌓였어. 힘껏 손을 뻗어, 나를 잡아 보겠니□"

즉 그림책 전체는 사계절 속에 변화를 겪는 나무가 화자(話者) 로서 건네는 잔잔한 말들이다. 나머지는 이렇다. "하나 둘 셋 열까지 세야 해. 은빛 달이 숲 위로 떠오르면 나를 찾아봐. " "기억해 주겠니□ 백년 전의 내 모습을 너처럼 조그맣던 내 모습을…. "

이 책을 붙잡은 어린이들은 아마도 보고 또 볼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의 부모가 자녀를 무릎에 앉히고 운율을 살려 읽어줘도 좋을 듯싶다. 이 책은 사실 특별한 스토리가 없다. 하지만 그저 말을 건네오는 자연과 교감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적이지 않을까.

읽어주는 맛은 〈수호의 하얀 말〉이 더 있을 법하다. 아무래도 민담 채록이라서 글이 많지만, 그림과의 조화가 매우 뛰어나다.

그림작가가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식 채색화의 흔적 대신 담백하고 힘이 들어간 그림으로 대륙의 정서를 진하게 전해주고 있다.

내용은 '마두금' 이란 악기의 탄생과 관련한 비극적 얘기다. 가난한 양치기 소년 '수호' 가 거둬 키운 망아지가 원님이 개최한 말타기 대회에 나가 당당히 일등까지 하지만, 결국 원님 차지가 됐다가 버려진다는 줄거리다.

하얀 말의 살과 뼈로 만든 악기가 '마두금' 이라는 얘기 등은 통상적으로 그림책의 소재는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장쾌한 그림과 함께 어렵지 않게 소화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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