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정책은 있는데, 대북정책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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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정책은 있는데 대북정책이 없다.” 최근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는 전문가들의 모임에서 지적된 내용이다. 정부가 통일항아리로 통일기금을 마련하고 통일 교육예산을 확대하는 등 통일정책에 열심이지만, 그 전(前) 단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은 없다는 것이다. 통일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북한과 어떻게 지내느냐에 대한 액션 플랜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 정부는 2009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이후 이렇다 할 회담 한 번 열리지 않았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에는 모든 경협을 중단하는 5·24 조치가 단행됐다. 북한도 연일 우리 대통령 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있다. 화해와 협력은커녕 군사적 대립과 긴장만 고조되는 형국이다. 정부 당국자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관련한 북한의 적절한 조치 없이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당국자의 말대로 지금의 남북 경색 국면은 북한이 저지른 도발 탓에 나타난 결과다. 하지만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리도 북한에 적절한 ‘출구전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제대 진희관(통일학) 교수는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히 응징하되 대화는 지속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적어도 5·24 조치 이전으로 되돌려 놓고 다음 정부에 넘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상생과 공영’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이를 위해 화해와 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실용과 생산성을 추구해 나가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그러면서 원칙을 강조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처럼 끌려가는 대북정책은 하지 않겠다” “5년 동안 남북대화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혀 왔다.

 많은 전문가는 이에 대해 “현 정부는 원칙을 지켰다고 하지만, 대북정책은 시험대에 오르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북한이 비핵화하고, 개방하면 주민소득이 1인당 3000달러가 되도록 도와주겠다는 ‘비핵·개방 3000’ 원칙을 경직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북한의 입지를 좁힌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제재(5·24 조치)와 대화 중단만이 능사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 정부는 통일항아리로 대표되는 통일 준비를 철저히 하면서, 동시에 현실성 있는 대북정책 마련이라는 유연한 ‘투트랙(two-track)’ 노선을 구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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