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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살해범, 왜 죽였냐고 묻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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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3일 제주 올레길 여자 관광객 살해범 강모씨가 제주동부경찰서 진술녹화실서 나오고 있다. [뉴시스]

23일 오후 7시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의 두산봉 입구.

 경찰이 설치한 노란색 폴리스라인 주위로 마을 주민 5~6명이 몰려들었다. 최근 올레길에서 실종된 여성 관광객 A(40·서울)씨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주민들이었다. 지난 12일 실종된 A씨는 두산봉 인근의 대나무밭에서 옷 일부가 벗겨진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주민 정모(63)씨는 “설마 했는데 올레길에서 살인이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서귀포에서만 60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 끔찍한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올레길에서 발생한 여성 관광객 피살사건의 범인이 붙잡혔다. 홀로 걷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한 범인은 올레길 인근 마을에 사는 40대 강도 전과자였다.

 제주동부경찰서는 23일 여성 관광객 A씨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강모(46·제주 서귀포시)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씨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별다른 직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 12일 오전 7시30분쯤 A씨를 납치해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 당초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올레길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목격자 제보와 폐쇄회로TV(CCTV) 분석 결과 현장에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또 최근 강씨가 지인에게 빌린 차량의 보조석에서 발견된 핏자국 등을 앞세워 집중 추궁한 끝에 이날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경찰은 강씨가 A씨를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강씨는 “소변을 보고 있었는데 나를 발견한 A씨가 크게 소리를 지르는 데 놀라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강씨는 A씨를 살해한 뒤 두산봉 입구 주변으로 사체를 유기했다. 하지만 14일 A씨 가족의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이 연인원 2000여 명을 투입해 성산읍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수색작업을 벌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A씨의 사체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강씨는 지난 19일 밤 A씨의 신체 일부를 잘라 신발에 넣은 뒤 이튿날인 20일 만장굴 입구의 버스정류장에 놓아뒀다. 버스정류장은 범행장소에서 18㎞가량 떨어진 곳이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가 경찰의 수색망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벌인 짓 같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날 범행을 자백한 이후에도 사체 유기 장소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몇 차례 진술을 바꿨다. 이 때문에 경찰 수색작업이 난항을 겪었다. A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당초 범행장소로 추정됐던 올레 1코스에서 걸어서 10여 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앞서 경찰은 21일 “강씨가 사건 당일 올레 1코스에서 쉬고 있었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강씨를 임의동행해 조사를 벌였다. 강씨의 진술에서 여러 의심점을 발견한 경찰은 23일 오전 6시10분쯤 거주지인 시흥리에서 강씨를 긴급체포했다. 강도 등의 전과가 있는 강씨가 사는 집은 A씨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마을에 있다.

제주=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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