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도산 3사 통합, KDI가 내놓은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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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 보고서와 법무부가 미국 법무법인(오릭, 헤링턴&서클리프)과 법무법인 세종으로부터 받은 용역보고서를 토대로 4월부터 도산3법 통합작업에 본격 착수한다.

정부는 재경부.법무부.법원.KDI.금융기관 관계자들로 작업반을 구성해 가을 정기국회에 통합법안을 올릴 계획이다. 재경부는 통합법안 마련을 위해 지난주 변양호 정책조정심의관을 반장으로 하는 도산3법 통합 실무추진반을 만들었다.

◇ 왜 통합하나=현행 법상 부실기업 중 회생할 기업과 곧바로 파산절차를 밟아야 하는 기업을 가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회사정리법에 의해 절차를 밟을 경우 법정관리 여부를 가리는 데 1년, 회사정리를 하는데 평균 14년이나 걸려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화의법과 회사정리법이 따로 있어 일단 화의절차를 밟던 기업이 회사정리법에 따라 법정관리로 가려면 별도 절차를 밟아야 하는 점도 법 통합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 2월 말 정부는 4대 부문 12대 개혁과제를 마무리하면서 상시 구조조정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했다. 도산3법은 상시 구조조정시스템의 주축이므로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초 법정관리 결정을 4개월 이내로 당기는 사전 조정제도 도입 방침을 밝히면서 도산3법을 통합, 올해부터 적용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통합작업에 참여한 관계자는 "총 8백개가 넘는 조항으로 이뤄진 3개 법을 올해 안에 하나로 통합하기는 불가능하다" 며 "회사정리 절차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제한적인 법 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 화의제도 남용 없애야=KDI는 화의제도 자체가 대주주에게 경영권을 인정하고 있어 기존 대주주들이 경영권을 연장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부채규모가 큰 기업들은 화의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DI는 그 방법으로
▶자산가치 또는 미래 영업흐름의 현가에 비해 부채가 비슷하거나 클 경우
▶부채규모 1천억원 초과
▶채권자 구성이 복잡한 대기업에 대해서는 화의 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황의인 변호사는 "법의 통합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면서 "화의제도를 아주 없애기보다 화의절차를 밟던 기업이 법정관리로 신속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고 말했다.

◇ 분명한 기준이 정리 속도 높인다=KDI는 도산 절차 곳곳에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효과적인 회사정리를 가로막는 요인들이 있다며 이를 제거할 것을 권고했다.

우선 도산상태에 빠진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도산 절차를 지연시켜 채권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기업의 경영진에게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일정기간(예컨대 15년)창업하거나 다른 기업 이사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넣는 방안을 제시했다. 영국이 이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KDI는 회사정리법에 따라 정리계획안을 만들 때 법원이 강제로 정리계획안을 확정할 수 있는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법정관리에 들어간 경우에도 기업이 법원의 통제를 하루속히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법정관리가 길어질 것 같으면 부채를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통해 채권단이 신속하게 기업을 정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또 3자 매각을 성공시키는 관리인이나 임직원에게는 적당한 보상(예컨대 10억원 이상)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화의.회사정리.법정관리 등 도산 절차를 신청한 뒤 대주주들이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도산 절차를 신청하는 동시에 자산을 동결하는 '자동중지 제도' 를 도입해야 한다고 KDI는 주장했다.

KDI는 특히 대우자동차처럼 부도난 회사가 고용안정협약에 묶여 인력을 정리하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해 근로기준법 외에 별도로 특별법을 만들어 경영상 해고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하자고 강조했다.

송상훈 기자 modem@joongang.co.kr>

◇회사정리법=기업이 스스로 회사를 꾸려가기 어려울만큼 빚이 많을 때 법정관리를 신청한다.이때 법정관리를 할지 파산 절차에 들어갈지를 판단할 때 적용하는 법이다.기업이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채권·채무 이행을 동결하는 재선보전처분도 동시에 내는데 법원은 이를 받으면 재산보전처분 명령을 내린다.법원은 이후 3개월 정도 시간을 갖고 법정관리를 받아들일지 결정하고,법정관리 결정이 나면 법원이 선임한 법정관리인이 경영을 맡는다.

◇화의법=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이 법원의 도움을 받아 채권자들과 ‘언제까지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파산을 면하는 화의 제도의 근거가 되는 법.기업이 다시 살아날 길을 찾는다는 측면에선 회사정리법에 따른 법정관리와 비슷하다.법정관리가 기존 대주주의 주식을 소각하는 것이 원칙이라서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운 데 비해 화의는 기존 대주주의 경영권을 인정한다.

◇파산법=회사가 도저히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정리하는 것을 파산이라고 한다.파산 신청은 채권자들이 할 수도 있고,법정관리 신청을 한 기업에 대해선 법원에서 결정하기도 한다.파산 여부는 기업을 계속 살릴 경우의 기업가치(존속가치)와 당장 청산할 때의 가치(청산가치)를 비교해 청산가치가 클 경우 파산 절차를 밟는다.파산 절차에 들어가면 회사의 자산을 채권자들이 나눠갖는데 완전히 정리할 때까지 몇년 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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