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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때도 없이 조는 당신, 기면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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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낮에 참기 힘든 졸음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기면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중앙포토]

직장인 김용길(33·가명)씨는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잠 때문에 고민이다. 처음에는 무더운 날씨로 잠을 설친 까닭에 피로가 누적됐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밥을 먹거나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도중에 잠들어 버릴 정도로 증세는 악화됐다. 일의 능률은 점점 떨어지고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는 것도 꺼려졌다. 스스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수면센터를 찾은 김씨는 기면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코모키수면센터 신홍범 원장은 “기면병 환자는 졸음으로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낮다”고 말했다.

낮에도 수시로 졸리면 기면병 의심

기면병 환자가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0년 기면병(발작성 수면장애)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1454명.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기면병 환자 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단순한 육체 피로로 여기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기면병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드는 수면질환이다. 졸음과 함께 갑작스러운 무기력증이 수반되기도 한다. 신 원장은 “밤에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낮에 참기 힘든 졸음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기면병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면병의 원인은 뇌에 있다. 각성에 관여해 잠을 깨우는 하이포크레틴(Hypocretin) 호르몬이 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된다. 기면병 환자는 하이포크레틴의 분비량이 적다. 이는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 주로 중·고등학교 때 기면병 증상이 시작된다.

교통사고 사망자중 30%는 졸음운전 탓

수시로 밀려드는 졸음은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신홍범 원장은 “기면증을 방치하면 사회적·경제적 피해를 불러일으켜 개인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실제 2010년 경상대 의대 박기수 교수팀이 기면병 환자를 설문조사한 결과, 환자의 22%가 사회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경제적 어려움(19.5%), 미래에 대한 불안함(19.5%), 건강 악화(19.5%), 자괴감(12.2%) 등이 기면병 환자의 고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적지 않다. 기면병 환자의 약 95%는 경제활동이 감소했다고 대답했다. 갑작스러운 졸음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 해고를 당하거나 아예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기에 기면병이 발병하면 학습 능력이 떨어져 정상적인 교육이 힘들어진다.

 더욱 위험한 것은 기면병으로 인한 2차 사고다. 대한수면의학회 조사 결과, 직장인의 12%가 졸음으로 인해 직업과 관련한 사고를 경험했다. 특히 운전 중이나 위험한 기계를 작동할 때 더욱 위험하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30%가 졸음운전에 의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면병 개선하려면 전문가가 개입해야

기면병 진단은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수면다원검사는 뇌파와 눈의 움직임, 심전도, 코골이 유무, 사지의 움직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대개 수면검사실에서 하룻밤 수면을 취하면서 검사가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정상인은 잠들기 시작해 꿈을 꾸는 렘(REM)수면에 들어갈 때까지 보통 80~90분이 걸리는 반면, 기면병 환자는 15분 이내에 렘수면 단계에 들어간다.

 기면병 완치법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기면병 치료제로는 현재 ‘프로비질’(JW중외제약)과 제네릭(복제약)인 ‘모다닐정’(한미약품)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프로비질은 세계 최초의 기면병 치료제다. 기존의 각성제는 여러 중추에 영향을 미쳐 야간 수면 방해·심혈관계 부작용·의존성 등의 부작용을 일으켰다. 반면 프로비질은 뇌의 시상하부에만 작용해 낮시간의 과다 수면만을 깨우고 정상적인 야간 수면을 가능하게 한다. 신홍범 원장은 “약물 복용을 선택하기에 앞서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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