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불 지피기, 풀 수 있는 건 다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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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앞줄 왼쪽 셋째)이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내수 활성화를 위한 민관 합동 집중토론회’에 앞서 경제단체장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허창수 전경련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이 대통령, 한덕수 무역협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날 오후 3시에 시작된 토론회는 9시간45분 동안 진행됐다. [최승식 기자]

정부가 경제 살리기의 승부처를 분명히 했다. 내수 활성화다. 부자마저 지갑을 닫는 상황이 지속돼선 경기가 살아날 리 없다는 판단에서다. 소비 감소로 타격이 가장 큰 곳이 건설업·자영업 등 종사자 수가 많은 분야란 점도 감안했다.

 그래서 풀 수 있는 건 다 풀기로 했다. 가계 빚 때문에 손보는 걸 주저해 온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일부 완화가 대표적이다. 골프장 이용료에 붙는 개별소비세도 없애거나 낮춘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대학과 대형병원에 숙박시설이 들어선다. 중견·중소기업 가업 승계에 대한 세제 지원도 늘린다. ‘부자 정부’라는 비아냥은 뚫고 가겠다는 자세다.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오후 3시부터 내수 활성화를 위한 민관 합동 집중토론회를 주재했다. 22일 0시45분까지 9시간45분간 진행된 ‘끝장토론’이었다. 저녁식사는 도시락으로 때웠고 야식으로 찐 감자와 옥수수가 나왔다. 정부에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경제부처 장관 등 17명이 참석했다. 민간에선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등 16명이 토론했다.

 해법은 철저히 MB식이다. 거시·금융정책 같은 큰 그림 대신 개별적인 사업(프로젝트) 위주로 토론이 진행됐다. 기업의 현장 목소리가 바탕이 됐다. 대통령 당선 직후 산업단지 전봇대를 뽑던 그 방식이다.

 토론과 대책은 세 분야로 나뉜다. 내수 활성화, 부동산시장 활성화, 투자 활성화다. 내수 진작을 위해 정부는 회원제 골프장에 붙는 개별소비세(교육세 등 포함 1인당 2만1120원)를 감면하기로 했다. 대중(퍼블릭) 골프장이 반대해 온 사안인데,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수요를 잡는 게 더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관세청은 7~8월 해외 관광객이 3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내구재에 붙는 개별소비세 인하 주장도 나왔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에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건설이 추진된다. 특히 경제자유구역에서 카지노 등을 지을 때는 사전 심사로 예비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사전 허가를 해주면 투자자의 불안요인이 줄어 투자가 늘 것이란 기대다. 관광호텔 건설 규제 완화도 추진한다. 현재 관광객 대비 숙박시설은 9000실이 부족하다. 대학 캠퍼스나 대학병원 내 숙박시설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삼성서울병원 같은 비영리 법인의 숙박시설 건설도 지원한다.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호텔 건축을 추진했으나 서울시가 불허했다. 미분양 아파트·오피스텔을 관광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은 “관광객이 늘었다지만 중국인 총관광객의 3%만 한국에 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 대표가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줄 때 물리는 상속·증여세는 지금보다 더 깎아주기로 했다. 지금은 연간 매출액 1500억원 이하인 기업에 대해 최대 300억원을 공제한다. 단, 가업 상속 후 10년간 고용을 유지한다는 조건을 지켜야 한다.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재래시장에서 쓰는 온누리 상품권 발행액을 올해 3000억원(지난해 2224억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내수 활성화가 정부 경제정책의 첫머리에 온 것은 수출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상반기 수출 증가율이 0.6%에 불과했다. 유럽 수출은 16.1% 감소했다. 신흥시장도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소비가 경기의 결과였지만 최근에는 소비 변화가 경기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기 수석은 “세계 경제의 부정적 영향이 본격화했을 때 대안은 내수 활성화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수가 승부처인 이유는 또 있다. 재정 지출을 늘리라는 지적에 정부는 ‘최근 경기 침체는 장기전’이라며 버텨왔다. 내수 활성화를 못하면 이런 요구에 계속 버틸 재간이 없다. 이렇게 되면 MB 정부는 경제 상황을 오판한 정부가 된다. 한 참석자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논의를 했다”며 “내수 활성화에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고 전했다.

 끝장토론 결과는 속도전하듯 신속하게 정책으로 만들 예정이다. 재정부는 23일 신제윤 재정부 1차관 주재로 관련 부처 회의를 열어 구체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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