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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입시지옥100년 전과어쩜 그리 똑같은지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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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호 16면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한창 벤처투자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바이오라는 이름만 붙으면 그게 실험용 쥐를 키워 파는 회사라도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가 넌지시 들려줬다.
“1920~30년대에도 비슷했어, 지금이랑. 네가 아는 채만식, 김기림, 김유정 이런 문인들도 ‘금’에 열광했었단 말야.” 마치 19세기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처럼 금광을 찾는 광풍이 그 시기 한반도에 불어닥쳤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이가 바로 KAIST의 전봉관 교수였고, 그 이야기는 몇 년 뒤 『황금광시대』(살림, 2005)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됐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근대문화 연구에 뛰어들었고 그 첫 결과물이 그의 출세작인 『경성기담』(살림, 2006)이다. 당시 인문서로서는 드물게 그해 ‘올해의 책’ 후보에 오를 만큼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그 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 바로 『경성자살클럽』(전봉관, 살림, 2008)이다.

숨은 책 찾기 <13> 살림출판사의 『경성자살클럽』

어느 날 저자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20~30년대에도 입시지옥에 시달리다 자살한 아이들이 있었다는 거 아나?”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관심을 확 잡아당긴 후에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길 좋아했다. 그에 따르면 그 시기 수많은 학생들이 입시 불합격을 비관해 줄을 이어 목숨을 끊었고, 심지어는 아들의 입시 실패를 비관해 아버지가 투신자살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입학시험은 워낙 경쟁이 심해 보통학교 입시든, 중등학교 입시든 우수한 학생을 뽑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정원을 초과한 인원을 걸러내는 데 중점이 두어졌다. 당연히 부모의 ‘부’가 중요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00원권 지폐 문제’였다.

당시 교사 월급이 50원 내외였던 터라 100원권 지폐는 가난한 집의 예닐곱 살 아동은 본 적조차 없는 것이었는데, 1935년 서울의 한 공립보통학교에서는 입학 시험으로 100원짜리 지폐를 꺼내놓고 ‘이것은 얼마짜리 지폐냐?’라고 물었다. 부잣집 자제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기 같은 문제였지만 가난한 집 자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답할 수 없었다. 당연히 세간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이 100원권 지폐 문제는 확실한 ‘변별력’을 인정받아 그 이듬해에도 출제되었다고 한다.

입학난 해소를 위해 총독부에서 행한 조치도 매우 익숙하게 들렸다. 1934년 ‘획기적’ 조치라며 들고 나온 것이 입시교육 금지와 입시과목 줄이기, 보통학교 교장 추천 등이었는데, 경쟁률이 10대 1이 넘는 상황에서 전혀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4년 후 내놓은 입시개혁안도 주입식 교육을 철폐하고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학과공부 이외에 군국주의 이념 학습과 체력단련 부담까지 떠안아야만 했다.

듣는 내내 어쩌면 지금의 입시 풍경과 그리 비슷한지 감탄을 거듭했다. 이처럼 ‘자살’을 둘러싼 신기하고도 흥미진진한, 그러면서도 현재의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의미심장한 이야기 10편을 저자는 『경성자살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전봉관 교수는 소설가스러운 인문학자다. 식민지 시대의 문화와 풍속을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스토리텔링해 독자들에게 마치 소설처럼 읽히게 했고, 식민지 시대의 이야기들이 문화콘텐트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경성기담』 이후로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 영화와 드라마, 연극 등이 유행처럼 번졌던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쉽게도 유행이 식어가면서 저자의 지속적인 탐사 끝에 나온 『경성자살클럽』은 생각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책에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다.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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