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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하균과 감독 장진은 어떤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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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감독과 배우는 부부와 같다.둘의 ‘금슬’이 좋아야 작품이 성공한다.감독-배우뿐만 아니다.종합예술인 영화는 제작진의 호흡이 생명이다.그래서 감독과 작가,연출가와 촬영감독 등 소중한 인연이 맺어진다.한국영화계에서 실과 바늘처럼 활동해온 단짝 영화인들을 시리즈로 만나본다.편집자

#1.도라지

꽃샘바람이 옷깃을 맹렬하게 파고들었던 지난 25일 오후 서울 한복판의 삼성본관.장진(30)감독의 신작 ‘킬러들의 수다’가 한창 촬영 중이다.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신하균(27)이 잠시 짬을 내 장감독과 마주 앉았다.

우선 그들이 꺼낸 담배부터 예사롭지 않았다.두 명 모두 일반인이 즐겨 찾지 않는 도라지를 빼들었다.“무슨 작전을 짰어요?”라고 물으니 장감독이 “이 친구가 담배도 나를 따라하네요”라며 피식 웃었다.“6년 전부터 선배가 피우는 도라지 향기가 좋아졌어요”라고 신하균이 계면쩍게 응답했다.

지난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병사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며 가능성을 확인시켰던 신하균을 영화에 끌어들인 주역은 장감독.‘기막힌 사내들’(1998년)에서 자살을 꿈꾸는 김추락,‘간철 리철진’(99년)에서 남파간첩의 아들인 우열 역에 캐스팅한데 이어 이번엔 아예 양아치 기질이 농후한 폭약 뇌관 설치전문가인 정우 역을 맡겼다.그의 영화 세 편에 빠짐없이 기용한 것이다.

신하균을 총애하는 이유에 대해 장감독이 “아직 값이 싸잖아요”라고 농을 던지자 신하균은 슬며시 미소만 지을 뿐.둘만의 공감대가 두텁게 쌓인 모양이다.한때 연극 무대에도 섰던 장감독이 “너처럼 날고 기는 배우 때문에 인생의 오점을 남지지 않으려고 연기를 접었다”고 치켜세워도 신하균은 얼굴만 붉혔다.

#2.물과 불

장감독과 신하균은 대조적이다.서울예대 동문인 그들은 학번으론 4년(장감독 89학번,신하균 93학번),나이론 3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마치 스승과 제자 같다.위트·재치가 넘치는 장감독이 뜨거운 불처럼 다그치면,신중·침착함 그 자체인 신하균은 깊은 물처럼 받아들인다.성격이 상반된 부부가 사이가 좋듯 감독-배우에도 그같은 함수가 성립하는 걸까.

“정말 든든한 연기자입니다.단 한번도 불성실한 적이 없었어요.처음이나 끝이나 똑같아요.연극에서나 영화에서나 준비 하나는 철저합니다.어느 배우·스태프보다 앞서 자기 공간을 찾아가 연습에 열중합니다.그리고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람이 달라져요.숨겨진 정열을 뿜어대는 것이죠.순발력이 뛰어나 항상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줍니다.”(장감독)

과분한 칭찬이 쑥스러운지 신하균이 고개를 돌린다.“평소엔 형이라고 부르지만 작품에 들어가면 엄연한 감독입니다.오랫 동안 저를 믿어준 게 고마울 따름이죠.배우로서의 자질을 일러준 사람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워낙 제 자신이 상대방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친해지기 힘든 성격이라 여러 모로 선배의 도움이 컸어요.”

신하균의 성실성을 알아볼 요량으로 그가 저지른 가장 큰 사고를 물었다.알람시계를 잘못 맞춰 연극 연습장에 30분 지각한 게 유일하다고 했다.신하균이 “고등학교 때 1박 2일간 몰래 가출해 아직도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장감독은 “식구들이 가출한 걸 알았데”라며 놀려댄다.

#3.분신

장감독은 신하균이 그의 페르소나(분신)란 영화계 일각의 시선을 크게 우려했다.감독이나 배우나 다 개성이 있기 마련이고,또 감독이 배우에게 어떤 주문을 해도 배우가 꼭두각시가 아닌 이상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마치 두 사람을 동일인 비슷하게 여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을 끝으로 당분간 하균이와 영화에선 만나지 않을 겁니다.그가 성장하려면 다른 감독의 작품도 다양하게 해야죠.그 감독에 그 배우란 인식은 연기자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되지 않겠습니까.”

신하균도 동의한다.사실 그는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커밍아웃’,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등에 출연하며 영화배로서의 이력서를 채워왔다.지난해엔 청룡·춘사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도 탔다.

“‘…JSA’를 찍으면서 송강호 선배에게 많이 배웠습니다.촬영 때나 쉴 때나 영화 얘기가 끊이지 않았죠.제가 게으른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도 했습니다.그래도 선배가 불러만 준다면….”

펄떡펄떡 뛰는 연기자보다 순간순간 정진하는 수도승 같은 그의 이미지가 또다시 느껴진다.그 정중동(靜中動)의 움직임에 날개가 달릴 날이 언제일지….일단 그에 대한 장감독의 신뢰는 대단해 ‘킬러들의 수다’(8월 개봉 예정)에선 그에게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책에 맡겼다.“하균아,그러고 보니 너 연예한지 7년이 넘었구나”며 상대의 속사정을 꿰뚫을 만큼 그들의 관계는 단단하게 보였다.

그들은 이런사이

연극·영화계에서 전천후로 뛰고 있는 장진 감독과 배우 신하균의 인연은 1993년으로 올라간다.당시 군대에서 제대하고 서울예대에 복학한 장감독이 학교 연극동아리 후배였던 신하균을 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연극 ‘폭탄 투하중’에 출연시켰다.

지금은 영화·연극 연출가론 드물게 고정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큰 장감독이지만 당시엔 신출내기 연극인에 불과했다.무엇 때문에 처음 신하균을 지목했느냐고 묻자 오히려 “학생 사이에 무슨 캐스팅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후 장감독과 신하균이 함께 손발을 맞춘 작품은 연극·영화를 합쳐 모두 열두편.장감독조차 가끔 손가락을 세봐야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있다고 한다.그동안 함께 한 연극으론 ‘택시 드리벌’‘매직타임’‘허탕’‘박수칠 때 떠나라’등이 유명하다.

신하균 이외에도 장감독과 꾸준한 인연을 맺은 배우로는 최근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임원희와,역시 장감독의 영화에 매번 출연한 정재영이 있다.이들은 99년 5월 대학로에 문화창작집단 수다를 만들며 우리 영화·연극계에 새로운 활력소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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