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구청장 "보고도 하지마" 룸살롱 단속 칼뽑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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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신연희 구청장

“지금부터 휴대전화를 꺼주세요.” 5일 밤 11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S관광호텔 앞. 강남구청 불법 퇴폐영업 단속반원 3명이 휴대전화를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단속 정보가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들은 S호텔에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룸살롱을 단속하려던 참이었다. 단속반은 3, 4층으로 올라갔다. 건물도면과 방 구조를 비교하기를 10여 분. 한쪽 벽에서 희미한 빛이 새나왔다.

벽을 밀자 500여㎡쯤 되는 넓은 밀실이 나타났다. 유흥업소로 허가받은 면적(700여㎡)의 3분의 2가 넘었다. 12개의 방 안에 취객과 여성 접대부들이 뒤엉켜 있었다. 이 밀실이 구청 단속반에 적발된 것은 처음이다.

그간에는 허가받은 공간에 대한 확인에 그쳤다. 강남구는 업주를 검찰에 고발하고 행정처분 절차를 밟고 있다.

 이날 단속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은 신연희 구청장의 뚝심과 주도면밀한 작전 덕분이다. 그는 서울시 첫 여성 회계과장과 첫 여성 행정국장에 이어 2010년 첫 여성 강남구청장으로 뽑혔다. 불법 퇴폐업소 퇴출은 신 구청장의 공약이었다. 2년간 검토를 거쳐 특별 전담팀이 꾸려졌다. 기존의 위생 담당부서로는 외압과 유착이 우려됐다. 2개 팀으로 운영되는 전담팀은 내부 공모를 거쳐 선발된 공무원 4명과 시민감시원 4명으로 꾸렸다. 전담팀장 이모(47)씨는 5년 동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파견돼 수사 실무를 익혔다. 신 구청장은 “전담팀은 나한테도 보고할 필요 없다. 책임자인 부구청장의 지시만 받으라”며 힘을 실어줬다. 신 구청장은 “이들의 어깨에 강남구의 미래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독려했다.

 전담팀은 신고면적을 초과한 불법 영업장과 영업정지 기간 중 비밀영업 행위, 불법 여성 접대부 고용업소 등을 위주로 단속한다. 그러나 아직 자체 수사권이 없어 잠긴 문을 뜯는 식의 강제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전담팀에 대한 특별사법경찰관 지정을 검찰에 요청했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지정될 것으로 강남구는 예상하고 있다. 특별사법경찰관이 되면 단속에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고, 업주들을 직접 조사해 검찰에 송치할 수 있다. 경찰을 거치지 않아도 돼 정보 유출이나 외압 가능성이 줄어든다.

 강남구에는 룸살롱 영업을 하는 유흥주점이 334개, 단란주점(접대부 고용 금지)이 430개나 있다. 일반음식점으로 위장한 룸살롱은 규모조차 파악이 안 된다. ‘계란으로 바위 깨기’ 같은 신 구청장의 도전이 2000년 여성 경찰서장으로서 청소년 성매매와의 전쟁을 치렀던 김강자(67) 전 서울 종암경찰서장과 닮았다는 말도 나온다. 신 구청장은 “불법 퇴폐업소가 남아 있는 한 강남구의 미래는 없다”며 “불법 영업이 뿌리 뽑히는 날까지 팀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신 구청장은 앞으로 주택가에 파고든 성매매로 단속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법정공방 끝에 지난 1일 성매매 장소를 제공한 라마다호텔을 2개월 영업정지 처분한 것도 신 구청장의 강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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