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화하는 가요계 '박하사탕' 그리워

중앙일보

입력

영화 '박하사탕' 보셨습니까. 미루다 미루다 본 영화. 싫었습니다. 영화가 보는 이를 그렇게 몰아부쳐도 되는 겁니까. 시간을 거슬러 조금씩 조금씩 몰고가 결국은 암흑같은 사념 속에 가둬버리다니.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던 저는 끊었던 담배를 찾아 불을 붙이며 감독을 향해 "나쁜 ××"라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까맣게 잊어버린 척 지내지만,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당신과 나를 호명해내 오늘의 우리 앞에 다시 세운 '박하사탕'은 그러나 좋은 영화였습니다.

조PD의 노래 '박하사탕' 들어보셨습니까. 두달 전 발표한 3집의 여섯번째 곡입니다. 조PD는 대뜸 묻습니다. "박하사탕 봤어? 삶이 뭐라고 생각해? 운명? 아니면 사명?" 뭐라고 답하시렵니까. 초보 형사로부터 고문받다 생똥을 싸지르던 운동권 대학생의 노트에 적혀있던 그 말, '삶은 아름답다'는 말을 인용하시렵니까.

조PD는 말합니다. "박하사탕에서 나는 널 봤지(…) 넌 마치 추억에 취한 것 같았지(…) 잘난 놈들의 힘주는 목소리에 내 인생은 일찍부터 환란(…) 내 눈에 비친 이 미친 가혹한 현실에 배신당한 채 살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슬퍼서 맘이 아퍼."

또 묻습니다. "한순간에 망친 그 이후론 미친 채 살아가는 건 너는 아니겠지?" 부디 당신은 아니기를 빕니다. 그러나 조PD는 여지없이 내뱉습니다. "하 아니기는. 정상인 채 하며 살아가야 하니."

모든 영화가 '박하사탕'처럼 당신과 나를 고문한다면 차라리 영화를 보지 않겠습니다. 노래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가수가 조PD같다면 그것도 고통일겁니다. 그러나 흥행대작들 속에서 영화 '박하사탕'의 존재 가치가 돋보이듯, '박하사탕' 같은 노래도 필요합니다.

이별의 아픔, 신나는 댄스, 화려한 뮤직 비디오도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모습을 담아 때로는 비웃고 때로는 위로하는 그런 노래도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새천년의 우리 가요계는 너무도 빈약합니다. 겉은 그 어느때보다 자유롭고 풍요롭지만 김민기의 70년대, 노래를찾는사람들의 80년대만도 못하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하입니까.

조PD는 1, 2집에 이어 3집 타이틀곡까지 전부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지상파 방송사 가요순위프로그램은 화려하고 흥겹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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