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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축구] 스타포커스 - 필리포 인자기

중앙일보

입력

얼마 전 외국의 모 축구전문 사이트에서 ‘세리에 A 스트라이커 가운데 가장 과대평가된 선수는 누구일까’라는 주제를 가지고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영예(?)의 수상자에는 유벤투스의 스트라이커 필리포 인자기(Filippo Inzaghi)가 꼽혔다.

그렇다면 과연 필리포 인자기는 그런 평가가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과대포장된 선수일까?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와 수긍의 일면이 있다. 일단 인자기는 자신이 스스로 찬스를 만드는 스타일의 플레이 성향을 가진 선수라 말할 수 없다. 절친한 콤비이자 그의 찬스메이커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델 피에로와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손꼽히는 지단이 그의 뒤를 받치고 적극적으로 득점을 돕고 있기에 그가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또한 그는 발재간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라고 할 수 없다. 실제로 그가 경기중 볼을 소유하고 있는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마치 자신에게 공이 주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하 듯 자신에게 온 공을 패스해 대기에 바쁜 것이 사실이며 오로지 골마우스 부근에서만 볼이 자신에게 투입되길 기대하는 모습은 그를 쏟아지는 비난에서 피해갈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서 그의 득점이 바티스투타에게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보는 이에게 청량감을 주는 시원스런 슈팅에 의한 것도 아니다. 또한 비에리와 같은 폭발적인 파워와 위협적인 제공능력으로 상대 수비를 제압하는 선수라고도 할 수 없다.

다만 그는 어떻게든 골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졌을 뿐이다. 흔히들 ‘주워먹기’의 달인이라는 식의 표현으로 인자기를 정의한다. 어떤 의미에서 체격이 왜소하고 상대수비수와의 몸싸움에서 곧잘 뒤쳐지는 등 여러모로 부족한 면모를 지닌 그는 앞서 나열한 조건들 이외에 자신의 포지션에 살아남을 만큼의 특화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보다 설득력있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한 그만의 장점이라면 바로 스피드와 반사능력, 그리고 기회포착 능력과 위치선정 능력 등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의 득점과 관련해 그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그리 온당한 비난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피포(Super Pippo, 필리포 인자기의 닉네임)는 1973년 8월 9일 이탈리아의 피아첸자에서 태어났다. 동생인 시모네(Simone Inzaghi, Lazio)와 함께 여느 이탈리아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축구를 시작한 그는 19살이 되던 91/92 시즌 피아첸자(당시 세리에 B)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한 뒤 현재 아탈란타의 연고지인 베르가모에 위치한 당시 세리에 C1 소속의 레페(Leffe)와 베로나, 다시 피아첸자를 오가며 활약했다.

데뷔 이듬해부터 세 시즌동안 언급한 세 클럽에서 모두 두자리수 이상의 득점을 올린 그의 놀라운 득점력에 주목한 현 파르마의 구단주 탄찌(Stefano Tanzi)는 95년 여름,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고 있던 불가리아의 축구영웅 스토이치코프와 필리포 인자기를 다음 시즌 팀의 투톱 파트너로 낙점하고 이들을 영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세리에 C1, B에 이어 야심차게 세리에 A 골네트 평정을 꿈꾸었던 인자기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부상의 악몽은 결정적이었다. 아마추어팀인 콜레키오(Collecchio)와의 연습경기에서 상대 수비수와의 충돌로 꼬박 60일동안을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했던 그의 세리에 A 데뷔시즌에 관해서는 15경기 출장에 2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가 잘 말해주고 있다.

이어 96/97 시즌 팀이 공격력 강화차원에서 새로이 키에사(Enrico Chiesa)와 크레스포를 영입하면서 그는 다시금 팀을 떠나야했고, 새롭게 둥지를 마련한 곳은 그의 오늘이 있게 만들어준 클럽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아탈란타였다. 인자기는 이적 첫해 팀의 총득점인 44골 가운데 24골을 성공시키며 몬텔라, 발보 등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세리에 A 득점왕에 등극하며 명실상부한 이탈리아 최고의 골게터로 거듭 태어났다.

이러한 명성을 등에 업고 다음시즌인 97/98 시즌, 잉글랜드 미들스브로(Middlesbrough)로 떠난 라바넬리(Fabrizio Ravanelli)를 대신해 유벤투스로 이적한 인자기는 델 피에로와 함께 팀의 스물 다섯번째 우승을 일구어내면서 예의 알렉스(델 피에로의 애칭)-피포 라인의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 시즌 막판의 득점력 빈곤으로 인한 트레이드설과 동료 델 피에로와의 불화설, 그리고 이번 시즌 초반 10경기 무득점으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감수해야만 했던 그는 리그 중반 다시금 득점포에 불을 붙이며 유벤투스 이적 후 4시즌 연속 두자리수 득점이라는 기록을 이미 달성했고, 현재는 유벤투스 소속으로 개인통산 100골 득점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또한 벤치멤버에 불과했던 지난 98 프랑스 월드컵과 달리 유로 2000 이후 팀의 확실한 주전 멤버로 자리매김하면서 2002 한일 월드컵을 향한 이탈리아의 레이스에 비에리와 함께 아주리 군단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나설 것이 예상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무수한 약점을 지니고 있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최대의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본능적인 골감각을 누구보다 잘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선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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