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2위·2위 … 박상현, 남은 건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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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발 일본으로는 오지 마라. 너는 일본보다 미국 PGA 투어가 더 잘 맞을 것 같다. 그쪽으로 가라.”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291야드로 장타 꽤나 친다는 오다 류이치(36)가 박상현(29·메리츠금융그룹)에게 한 말이다. 지난 1일 끝난 한·일 프로골프 국가대항전인 2012 밀리언야드컵에서다. 농담이었지만 ‘작지만 강한’ 박상현에 대한 두려움이 담긴 표현이었다.

 박상현은 한·일전 첫날 포섬 경기에서 이동환(25)과 팀을 이뤄 6언더파를 쳐 오다 류이치(36)-이케다 유타(27) 조를 5타 차로 압도했다. 키 1m80㎝, 몸무게 90㎏의 오다는 권투 선수로 치면 헤비급이다. 박상현은 키 1m70㎝, 몸무게는 68㎏이다. 오다는 키가 10㎝나 작고 체중은 12㎏이나 적게 나가는 박상현이 자신보다 드라이브샷을 10~20야드나 더 멀리 날리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박상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올 시즌 한국프로골프투어(KGT)에서 그의 드라이브샷 거리는 280야드 안팎이다.

 “잘 모르겠다. 대회를 보름 정도 앞두고 왼 발목을 접질려서 정상이 아니었다. 진통제까지 먹고 뛰었다. 한·일전이라는 분위기가 나의 모든 스윙 감각을 증폭시킨 것 같다.” 박상현은 5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첫 일본 원정 경기여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한 정신력이 내 골프의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온 것 같다. 강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하반기 무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KGT 무대에 데뷔했지만 아직 1인자 자리에 오른 적은 없다. 2009년 SK텔레콤 오픈과 에머슨 퍼시픽 힐튼남해 오픈에서 우승했지만 이후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성과라면 지난해 우승 없이도 상금랭킹 2위에 올랐고 올해도 상반기 5개 대회에서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그의 고민은 ‘2위’란 숫자의 마법을 푸는 것이다.

 “올해도 두 차례(매경오픈과 메리츠솔모로오픈) 최종일 1, 2타 차 2위로 출발했다가 미끄러졌다. 다행히 SK텔레콤 오픈에서는 5위에서 준우승까지 올라갔지만 그 역시 2위였다. 이제 ‘꽃미남’도 좋지만 ‘강한 남자’ 박상현으로 불리고 싶다.”

 박상현은 얼굴이 곱상해 ‘꽃미남’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별명처럼 여린 선수는 아니다. 그는 자신만의 모험을 즐길 줄도 안다. 박상현은 2007년 군복무(전투경찰) 중 휴가를 모아 그해 말 KGT 퀄리파잉 스쿨을 20위로 통과한 저력의 사나이다. “나 자신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1년 넘게 골프채를 잡지 않았는데 휴가 15일을 이용해 시드권을 따냈다. 그래서 군복무 중에도 투어카드를 잃은 적이 없었다”는 그는 “나에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야성이 있다. 하반기에는 그런 강인한 모습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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