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고대 철학자 12인 초빙, 풀코스 강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철학을 권하다:삶을 사랑하는 기술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 옮김, 더퀘스트
380쪽, 1만5000원

이런 대중철학서는 거의 처음이다. 얘기 풀어가는 방식·짜임새는 물론 내용까지 신선하다. 아니 탁월함의 표본이다. 30대 영국인 저널리스트가 쓴 이 신간은 등장인물도 이채롭다. 소크라테스·에픽테토스 등 고대철학사의 큰 이름 12명 사이에 전직 조폭, 현역 군인에서 신비체험을 한 우주인 등 우리시대 사람들 사연이 속속 등장한다.

 이들의 공통점. 누구 못지않게 철학공부에 열중한다. 특히 고대철학을 파는 중인데, 근대철학과 달리 좋은 삶과 행복을 포괄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삶의 고비를 건너는 힘을 키우기에 고대철학이 좋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상징이 미 육군 소령 토머스 재럿. 그는 3년 전 이라크 파병 병력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에픽테토스·세네카 등 스토아철학 강의를 시작했다.

 물론 정규교육의 일환인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군인에겐 철학이 필요해요. 군 복무를 봉사로 여기는 철학, 힘든 상황에서 철학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걸 당장 버려야 해요. 그건 개똥철학이니까요.”(113쪽) 학문화된 철학, 그래서 ‘구름 위의 철학’으로 바뀐 강단철학에 대한 경고일까.

 책에 나오는 현직 경찰 제시야말로 삶의 달인이다. 조폭생활을 하다가 군 복무 중 재럿을 통해 철학의 맛을 본 뒤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그는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다룬 『화에 대하여』를 쓴 로마시대 세네카를 매일 읽고 메모한다. 그런 철학이 현장 근무에서 얼마나 유용한가를 그는 보여준다.

 『철학을 권하다』가 좋은 책인 이유는 부스러기 철학사 정보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개똥철학’ 대신 우리 시대 삶의 이야기로 바꿔준 고대 현자(賢者)의 삶이 싱싱하다. 내용 구성은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 암시를 받았다. 여기에 나오는 철학자를 초빙해 하루짜리 풀코스 강의를 듣는다. 그게 이 책인데, 고대철학은 오랜 상대주의 지적 풍토와 포스트모더니즘 전성시대의 거품이 서서히 빠지면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는 ‘철학의 신(新)서부’이다.

 즉 신간은 단순한 입문서 그 이상이며, 평생교육의 교재로 손색 없다. 실은 런던필로소피클럽의 공동창립자이자 운영자인 저자 자체가 연구대상이다. 옥스퍼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졸업 뒤 찾아온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을 철학 공부로 이겨낸 실제 주인공이다. 아파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산 내용도 그 때문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