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사 목적 고래잡이 추진” 시 셰퍼드 “포경선 공격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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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범위에서 과학조사 목적의 고래잡이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환경보호단체와 포경 반대 국가들은 이를 사실상 상업적 포경으로 간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 대표단은 4일(현지시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에서 내년 IWC 산하 과학조사위원회에 이 같은 계획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과학조사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제출한 과학조사 목적의 포경 계획서를 심사해 적정한지 판단하게 된다.

 국제사회는 1986년부터 협약에 따라 멸종위기에 놓인 고래 12종에 대한 상업적 포경을 유예(모라토리엄)하고 있다. 상업 포경을 재개하기 위해선 IWC 회원국 4분의 3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미국·호주·뉴질랜드 등 포경 반대 국가와 노르웨이·아이슬란드 등 포경 지지국은 비슷한 숫자다.

 상업 포경 외에는 일본처럼 과학조사를 목적으로 하는 포경이 있다. 그러나 이는 포경 금지체제의 구멍을 악용한 꼼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 정부의 발표 역시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당장 호주 줄리아 길라드 총리는 외교적 항의(diplomatic protest)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멜버른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 전례를 따라 고래잡이를 하려는 계획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주한 호주대사에게 즉시 한국 정부의 최고위급 카운터파트를 만나 강한 반대의 뜻을 전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야당 지도자들도 즉각 성명을 내고 길라드 총리의 조치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쪽 IWC 대표단 라이언 울프도 “미국은 원칙적으로 연구 목적으로 고래를 죽이는 일에는 반대”라고 말했다.

 환경단체의 반발도 이어졌다. 그린피스의 제임스 로렌즈는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상업적 포경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과격 환경보호단체 ‘시 셰퍼드’는 “고래잡이에 나서는 한국 배를 공격(harass)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호주 일간 디 오스트레일리안이 전했다. 이 단체 활동가들은 조업 저지를 위해 배에 올라타거나 악취탄을 투척하는 등 폭력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시 셰퍼드 설립자는 살인미수 혐의로 독일 경찰에 체포된 상태다.

 이 소식을 전하는 외신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AFP통신은 우리 정부에 대해 ‘defiant(반항하는)’라고 표현했다. 영국 BBC방송은 우리 정부가 86년 IWC에 보고 없이 밍크고래 69마리를 포획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 일로 한국 정부는 엄청난 외교적 압박을 받고 포경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유통되는 고래고기는 대부분 그물에 걸려 죽은 ‘혼획’ 물량이다. 밍크고래 기준으로 연평균 80마리 정도다. 하지만 울산·포항을 중심으로 성업 중인 고래고기 음식점은 50~60곳에 이른다. 이에 한국 정부는 ‘고래포획 금지에 관한 고시’를 25년 만에 전면 개정해 지난해부터 주변 수역의 고래 관리를 대폭 강화하는 등 국제사회 기준을 따르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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