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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헝그리 정신’, SK가 배우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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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최태원 회장

SK그룹이 올 2월 인수한 SK하이닉스 배우기에 나섰다. 인수 기업이 피인수 기업을 배우려는 것은 이례적이다. 하이닉스 특유의 ‘헝그리 정신’에 주목한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는 5일 “2001년 10월 하이닉스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주인 없는 회사이면서도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유명한 반도체 시장에서 10년 이상 버텨 온 저력에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그룹 고위 경영진이 주목하고 있다”며 “과거 대형 인수합병 때마다 피인수 회사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이 하이닉스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거센 바람이 불면 스러져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풀뿌리 근성이다. 하이닉스는 기업구조조정을 거치면서도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2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일본 유수의 반도체 업체들과 독일 인피니온이 스러지는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강인함이 SK에는 부족하다는 게 SK 내부의 판단이다. SK는 그간 업계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던 회사를 인수합병하는 식으로 기업을 키웠다. 옛 유공이 전신인 SK이노베이션이 그렇고, 한국이동통신을 뿌리로 한 SK텔레콤이 그렇다. 사실상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을 그룹 구성원으로 끌어들여 사업을 하다 보니 도전정신과 위기를 헤쳐 나가는 능력보다는 1위 자리를 지키는 방어적 경향이 강해졌다. 그래서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하이닉스의 기업문화인 ‘헝그리 정신’에 새삼 주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SK그룹의 한 임원은 “지금처럼 경기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하이닉스식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는 게 그룹 고위층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하이닉스 배우기의 중심에는 최근 SK하이닉스에 신설된 변화추진팀이 있다. 이 팀의 업무는 SK하이닉스의 조직문화와 SK그룹의 문화를 연구해 이를 상대방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최태원(52) SK그룹 회장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경영환경은 어려워지는 반면 투자할 곳은 늘어나는 SK그룹의 고민이 반영됐다. 실제로 그룹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의 경우 2009년 12조1010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12조7047억원으로 크게 늘어나지 않은 반면 LTE망 구축 등에 올해만 2조3000억원을 새로 투자해야 한다.

 SK하이닉스의 기업 문화를 배우는 것 못지않게 이 회사의 정체성을 지켜주려는 배려도 한다. 우선 SK그룹은 하이닉스의 기존 인사 틀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사원들의 직급을 ‘매니저’로 통일한 SK그룹과는 달리 SK하이닉스는 ‘사원-선임(대리)-책임(과장·차장)-수석(부장)’의 직급을 그대로 사용한다. 하이닉스의 직급체계가 반도체 업계 상황에 맞춰 잘 설계·운영돼 왔다는 판단에서다. SK하이닉스로 보내진 SK그룹 내 직원 숫자도 최소화했다. 인수 직후 김준호(55) SK텔레콤 코퍼레이트센터 센터장(사장)을 비롯한 임원·팀장급 직원 14명이 SK하이닉스로 파견된 게 전부다. 최 회장에게 SK하이닉스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주도한 첫 대형 인수합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SK그룹에 편입된 이래 입사 지원자도 큰 폭으로 늘었다. SK하이닉스의 올 상반기 신입사원 전형 지원자는 지난해의 두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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