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114 인사말 이젠 “힘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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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안내 전화멘트가 4일부터 “힘내세요 고객님”으로 바뀐다. 전화번호 안내업체 ‘케이티스’ 직원 이영희·박주미·최은경·최은영씨(왼쪽부터)가 3일 서울 숭인동 사무실에서 ‘힘내세요’를 외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사랑합니다” 시대는 가고 “힘내세요” 시대가 왔다.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114의 인사 멘트 얘기다.

 114 안내를 운영하는 KT 계열사 케이티스는 3일 “5년여 동안 사용했던 ‘사랑합니다’ 대신 4일부터 ‘힘내세요 고객님’이라는 새 인사말로 고객을 맞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 전병선 미디어마켓부문장은 “젊은이들은 취업 걱정에, 가장들은 조기 퇴직과 제2 인생에 대한 두려움에 찌들어 있다. 고객의 기운을 북돋워 드리기 위해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케이티스는 새 인사말을 뽑기 위해 상담사 10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행복을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신속 정확한 114입니다’ ‘고객과 함께하는 114입니다’를 비롯한 10개의 후보 가운데 ‘힘내세요 고객님’이 38%를 득표해 새 인사말로 결정됐다.

 114 안내 멘트의 역사는 1930년대 경성전화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화기 옆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면 교환원은 짧게 “네”라고 응답했다. 발신자가 “자장면집요”라고 문의하면 교환원은 연결 잭을 중국집 코드에 직접 꽂아줬다. 서비스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전화 연결이라는 ‘혜택’을 제공하던 교환원의 “네”라는 무뚝뚝한 응답은 1970년대까지 계속됐다.

 1980년대 초 장거리자동전화(DDD)가 나오면서 안내원은 자신의 자리 번호를 대는 방식으로 응답했다. 13호 안내원이라면 “13호입니다”라고 답하는 식이다. 이때는 안내원들이 두툼한 전화번호 책을 앞에 두고 책장을 뒤적여가며 번호를 안내했다. 노련한 교환원들은 중국집·약국·병원처럼 고객들이 자주 찾는 전화번호를 달달 외우고 있다가 곧바로 알려주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지금도 익숙한 “네~네~”가 널리 쓰였다. 안내의 속도에 중점을 둔 멘트였다. 고객들은 다른 인사말을 듣는 것보다 빨리 안내 받기를 원했고 전화국도 몰려오는 문의 전화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오래 응답할 수 없었다.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던 1997년 6월부터는 “안녕하십니까”가 사용됐다. 가장 무난하고 듣기 편안한 인사라는 이유로 선정됐다. 안내원들은 듣는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듣는다는 ‘솔’ 음정으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응답했다. 이 시절 케이티스는 안내원을 선발할 때 ‘솔’ 음정으로 발음하는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저기 있는 콩깍지가 깐 콩깍지냐 안 깐 콩깍지냐”처럼 발음하기 어려운 문장을 ‘솔’ 음정으로 틀리지 않고 말해야 면접을 통과할 수 있었다.

 10년간 명맥을 잇던 “안녕하십니까”는 2006년 들어 “사랑합니다”에 바통을 넘겼다. KT 제주전화국에서 처음 시작한 “사랑합니다”는 고객의 반응이 뜨거워 전국으로 확산됐다. 고객 중엔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 들었는데 감동했다”며 감사해하는 이도 있었다. 다만 여성 교환원들에게 성적인 농담으로 대꾸하는 고객들이 있어 오후 10시 이후에는 “안녕하십니까”를 사용했다. ‘사랑합니다’라는 멘트가 특정 종교를 전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어 2010년부터 1년간 “반갑습니다”를 잠시 쓰기도 했지만 “사랑합니다”는 6년 가까이 114 인사 멘트 자리를 지키다 이번에 ‘힘내세요’에 자리를 내줬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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