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A 기술, 이젠 수출도 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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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38) ㈜제이텔(http://www.jtel.co.kr) 대표의 사무실 벽장 속에는 때묻은 침낭과 베개가 있다. 밤늦도록 작업하다 지치면 사무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잔다. 퇴근은 아침에 한다. 회사를 만든 지 5년째지만, 여전히 창업 초기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신대표는 "문 잠그고 자는 건물 경비원을 깨우기가 미안해 사무실에서 자는데, 1주일에 나흘 정도 될 것" 이라고 말한다.

신대표는 재계 6위인 롯데 신격호 회장의 조카로, 창업 전에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미국 시러큐스대 전산학 박사(데이터베이스 시스템)▶삼성그룹 최연소 과장(27세)의 경력에서 보듯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신대표는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1992년 말, 당시로선 개념조차 생소했던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휴대형정보단말기) 개발에 뛰어들었고, 97년 말 아예 회사를 차려 ''셀빅'' 상표의 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국내외 PDA 시장을 열어가고 있다. PDA는 노트북보다 훨씬 작은 소형 컴퓨터로, 일정관리.주소록.메모장 등 개인정보 관리도 할 수 있고 무선인터넷 쪽에서도 쓰임새가 커지고 있는 첨단 기기.

제이텔은 미국의 팜컴퓨터 등 세계적인 기업에 맞서 활동 폭을 차츰 넓혀가고 있다. 올들어 중국에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를 로열티를 받고 수출하는 한편 유럽에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 수출을 시작했다.

- PDA가 소개된 지 제법 됐지만 아직 생소해 하는 이들이 많은데.

"기능이 강화된 전자수첩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실은 그보다 훨씬 기능이 많다. 다만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지도가 낮다. 지난해 광고비를 30억원 정도 썼다.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 갖고 다닐 수 있다'' 는 컨셉을 알리기 위해서다. 우리의 주 고객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자다. 여성 고객을 늘리기 위해 이들에 맞는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도 생각 중이다. "

- 수출을 늘려가고 있는데, 해외 시장에서의 가능성은.

"시장은 큰데 진입장벽이 높다. 미국과 유럽에선 팜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를 뚫어야 한다. 중국은 현지 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낮은 반면 관세장벽이 높아 현지 업체에 기술을 주고 로열티를 받는 방식으로 진출한다. "

- 미국의 대기업과의 경쟁이 버겁지는 않은가.

"사실 소비자 시장에서 경쟁하기는 힘들다. 왜 운영체제로 윈도CE나 팜을 안쓰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차별화가 안된다. 우리가 만든 운영체제를 국내 산업표준으로 만들고 싶다. 이를 기반으로 초기단계인 아시아와 중국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면 된다. 국내 시장은 점유율이 60%나 돼 자신있는데, 해외에서 브랜드를 확산해 나가기에는 아직 파워가 약하다. "

- 삼성에 근무하면서 PDA사업을 계속할 수도 있었을텐데.

"애플에서 PDA를 발표한 것을 보고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해서 삼성에서 시작했고,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 자체 운영체제를 개발했고, 5만명의 보험설계사에게 제품을 보급했다. 당시 우리가 개발한 칩을 토대로 96년 팜이 탄생했다. 삼성에서 나온 것은 내 사업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인터넷 쪽을 해보고 싶어 한솔텔레콤에서 1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삼성 PDA개발팀에서 일하던 몇몇이 모여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사장되는 게 너무 아깝다'' 고 의기투합해 창업했다. "

- 창업때 롯데 도움은 없었나.

"자금 등 여러 면에서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이들이 있는데, 전혀 없었다. 지난해에 현대백화점에 매장을 냈는데, 롯데백화점에는 아직 없다. "

- 셀빅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선진국 제품에 비해 기본기술은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보다 오랫동안 제품을 만들어온 만큼 디테일한 기능에서는 우리보다 앞선다. 셀빅의 장점은 한글이 완벽하게 지원된다는 점이다. 값도 절반 이하로 싸다. 국내 무선데이터 통신 경험을 살리면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접속도 되고 e-메일 확인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올해말께 내놓을 계획이다. 전화기 일체형 제품도 상반기 중 나온다. "

- 자체 공장을 갖출 계획은 없나.

"우리의 경쟁력은 기술에 있다.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직원 49명 가운데 24명이 연구직이다. 자체 공장이 없을 경우 기술이 새어나갈 위험도 있지만 새로운 기술을 자꾸 개발하면 된다. 기술 발전이 워낙 빠른 만큼 변화에 잘 적응하는 회사가 되는 게 중요하다. "

- 올해 목표는.

"지난해에는 1백20억원 매출목표를 세웠는데 경기 악화로 절반 정도인 63억원에 그쳤다. 올해는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어 2백50억원을 목표로 정했다. 경영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성장해 나가는 ''좋은 회사'' 를 만들고 싶다. 10년 후면 좋은 회사가 될 것이다. 1백년 후에도 좋은 회사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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