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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꿈' 사이버 버전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수년 전 일본의 사이버 가수 다테 교코나 우리나라의 아담 등 '사이버 캐릭터' 의 등장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당시 '사이버 캐릭터' 의 등장은 하나의 조짐처럼 보였다. 인터넷 환경의 일상화.가상공간의 현실화가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것이라 여겨지면서 실재와 비(非) 실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종국에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성급한 예언마저 등장했다.

이 예언의 배후에는 '사이버펑크의 아버지' 라 불리는 SF 작가 윌리엄 깁슨이 있다. 그는 인터넷과 가상공간의 개념이 구체화하기 훨씬 전인 1984년 이미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오른 소설 『뉴로맨서』에서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 라는 말을 만들어낸 작가다.

그의 96년작 『아이도루』는 록밴드 리더와 사이버 여가수의 결혼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로, 실제로 다테 교코를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했다. '아이도루' 란 대중문화의 우상을 뜻하는 '아이돌(idol) ' 의 일본식 발음이다.

인기 록밴드 로/레즈의 리더인 레즈가 사이버 아이돌 스타인 레이 토에이와 결혼한다는 소문이 퍼진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레즈의 팬클럽에서 10대 소녀 치아를 파견한다.

한편 레즈의 경호원은 이 결혼에 뭔가 수상한 점이 있다고 의심을 품고 데이터 분석 전문가인 콜린 레이니를 고용한다. 레이니는 레즈가 왜 그런 이상한 결정을 내렸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의 데이터를 조사하던 중 토에이와 마주친다.

『아이도루』의 무대는 월드 시티라 불리는 철저한 버추얼 리얼리티의 세계다.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연결돼 있어 네트워크 안으로 접속하면 모든 감각을 사용해 타인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권력은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자에게 주어진다.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들이 겪게 될 부조화와 부적응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뉴로맨서』가 그렇듯 여느 SF소설에 비해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는 사전 지식을 갖고 읽으면 '접속분기점' 이니 '멀티 유저 도메인(MUD) ' 이니 하는 용어들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깁슨의 예언과 우리의 현실 사이의 틈새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는 점이 깁슨 소설의 매력이다.

NOTE:윌리엄 깁슨의 소설 분위기를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영화로는 '매트릭스' '블레이드 러너' , 그리고 '스트레인지 데이즈' 등을 꼽을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상이 디스토피아냐 유토피아냐. 정답은 아직 없다.
(윌리엄 깁슨 지음/ 안정희 옮김/ 사이언스 북스/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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