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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현 세대가 결단 내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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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부의 재정추계치보다 5년 먼저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그보다 먼저 통계청의 특별인구 추계도 나왔다. 가까운 시일 내에 저출산 문제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당초 정부의 전망보다 다소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공통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우리도 심각한 인구학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출산율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야 하는 노동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연금을 받아야 하는 고령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노후에 현재의 약속된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 수준이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우리 세대가 어느 정도 부담을 나누어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기초연금을 비롯하여 국민연금에 대한 수많은 개혁 방안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부담을 누군가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민연금은 보험료 납입기간이 최대 40년까지, 연금수급 기간은 60세부터 사망까지로, 장기간 영향을 미치는 제도이므로 미리 여러 가지 지표를 활용한 재정전망을 60~70년 이상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장기 재정 전망하에 현재의 부담.급여구조를 조정해 나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관계 전문가.학자와 함께 계산해 보니, 현재의 보험료 수준과 소득대체율(급여) 수준이 그대로 유지되면 우리의 후손 세대가 월소득의 30~40%를 부담해야 하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정말로 감당할 수 없는 후세대의 부담 위에 우리 세대의 노후소득이 보장받고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현재의 저부담.고급여 구조를 '적정부담.적정급여'체계로 바꾸자는 것이 현재 국회에 제출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주요 사항이다. 이는 지속 가능한 건전한 국민연금제도를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다.

개정안 마련을 위해서 각계각층의 대표와 전문가들이 모여 수많은 토론을 거쳤다.

이는 비단 국민연금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근래에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온실가스 규제가 이슈화되고 있다. 현재의 에너지 소비 패턴이 지속되면 기후변화로 인하여 큰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지표와 추세에 대한 장기적 전망치를 내놓고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 현재 우리 세대의 절제와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추어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배출 규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국민연금에도 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하고 예측 가능한 모든 변수에 기초한 계산하에 현재 우리의 제도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예측치에 대한 이의가 있을 수 있고 계산방법에 대한 토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거친 뒤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모두의 동참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구의 고령화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고 책임이다. 이러한 짐은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정을 뒤로 미룰수록 그 짐은 더욱 무거워질 수 있다.

제도를 처음 설계할 때부터 이러한 인구 고령화 문제를 감안하지 못한 점, 그리고 이제 와서 제도 변경과 국민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정부의 태도와 정책적 미숙에 대한 질책은 피할 수 없다. 받아들이겠다. 다만 많은 나라에서 사회보험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 낮은 보험료에서 시작해 국민의 동의를 용이하게 얻어냈다는 사실은 얘기하고 싶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대해 조금은 잘못 알려지거나 일정하게 과장된 부분도 있다. 법이 개정된다 해도 기존에 가입한 기간에 대해서는 종전에 약속한 대로 연금이 계산되어 지급된다. 또한 현재 이미 받고 있는 분들의 연금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보험료도 당장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2010년부터 5년마다 단계적으로 인상하여 2030년까지 15~16%로 올리자는 장기적 계획이다.

선진국들이 수십 년 동안 연금개혁의 진통을 겪어오고 있는 데 비해 우리 제도는 비교적 정착되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보험료 수준도 결정적으로 지나친 부담은 아니라는 것이 학자들의 다수 견해다.

제도에 대한 불신이나 추가 부담을 이유로 더 이상 개혁을 늦춰서는 안 된다. 미래 세대에게 지워질 부담을 우리가 함께 나누기 위한 현 세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