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이병헌, 할리우드 한복판에 손도장 찍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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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병헌(위 사진 왼쪽)과 안성기가 23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그루먼 차이니스 극장 앞에서 아시아 배우 최초로 핸드프린팅 행사를 한 뒤 양 손을 올려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이들이 핸드·풋프린팅을 한 콘크리트 판(아래 사진)에는 ‘대한민국 배우 이병헌, 안성기’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로스앤젤레스=백종춘 기자]

한국 영화의 간판 배우 이병헌(42)과 국민 배우 안성기(60)가 아시아 배우 최초로 세계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에 손도장을 찍었다. 한국 영화의 높아진 위상이 할리우드의 심장에 새겨진 순간이었다.

 이들은 23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거리에 있는 그루먼 차이니스 극장 앞마당에서 아시아 배우 최초로 손과 발도장을 찍는 핸드프린팅 행사를 했다. 85년 역사의 그루먼 차이니스 극장은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앞마당 바닥에는 찰리 채플린, 메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알 파치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조니 뎁 등 톱스타 200여 명의 핸드프린팅이 있다.

 안성기와 이병헌은 23, 24일 이틀간 할리우드에서 열린 ‘룩 이스트 코리안 필름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자격으로 손도장을 남겼다. 아시아인으로는 중국의 우위썬(吳宇森) 감독이 2002년 처음으로 이곳에 핸드프린트를 한 적이 있다. 현장에는 일본에서 온 한류팬들을 비롯해 한국 영화 팬 200여 명이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모여들었다. 이들은 축하 메시지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며 두 배우에게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이병헌과 안성기는 이날 ‘트랜스포머’ ‘지 아이 조’ 시리즈 등을 제작한 유명 프로듀서 로렌조 디 보나벤추라의 소개로 차이니스 극장 마당에 등장했다. 이어 콘크리트 판에 ‘대한민국 배우’란 글귀와 함께 한글로 이름과 사인을 남긴 뒤 핸드프린팅과 풋프린팅을 차례로 이어갔다. 두 사람은 들뜬 얼굴로 콘크리트가 묻은 손을 들어 흔드는가 하면 힘주어 발자국을 찍어 현장에 모인 언론과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병헌은 “관광객으로 지나치기만 했던 차이니스 극장 앞에 직접 손도장을 남겼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20년간 해왔던 배우 활동보다 앞으로 20년 동안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여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성기는 “55년 배우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라며 “이 영광이 계속 이어져나갈 수 있도록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영화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영화계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이창동·박찬욱·김지운 감독 등도 참석했다. 김동호 위원장은 “할리우드 한복판에 한국 배우들의 손도장을 남기게 된 것은 두 사람만의 영광이 아닌 한국 영화계 전체의 영예”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이병헌, 안성기 인터뷰 전문

<이병헌>

이병헌은 “정신이 없다”는 말로 핸드프린팅의 소감을 요약했다. 그는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자신을 향해 터지는 주요 언론들의 카메라 플래시와 팬들의 뜨거운 환호가 감격스러운 듯 시종 밝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아시아 배우로서는 최초로 핸드프린팅을 남겼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 앞에서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을 찾고 사진을 찍던 관광객이었다. 배우로서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추억이 될 듯 하다. 많은 분들이 오래오래 보실 수 있도록 푹 눌러 찍으려 했는데 콘크리트가 일찍 말라버려 그러지 못해 아쉽다.”

- 현장에서 팬들의 응원이 대단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일본팬들은 물론 미주 한인들도 많이 나와줘서 큰 힘이 됐다. 고마운 마음에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리려고 노력했다.”

- 큰 자부심도 생길 법 하다.

“물론이다. 하지만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한국 영화의 힘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목표로 삼기조차 힘들었을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내 후배들에게는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다. 어서 후배들에게 가장 쉽고 빠른 길이 무엇인지 충고해줄 수 있는 선배의 위치까지 가고 싶다.”

- 세계 영화시장을 향한 발빠른 행보를 계속하는 듯 하다.

“세계 무대가 워낙 넓긴 하지만 배우로서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영화계에 진출하고 싶다는 꿈은 항상 품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나고 자란 배우인만큼 우리 말로 우리 문화를 표현하는 것 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하지만 일단 국제 무대에서 시작을 했으니 그 문화를 빨리 읽히고 그 언어를 빨리 익혀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우리 한국 배우들만이 가진 장기를 무기로 한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금방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영어는 좀 편해졌나.

“전혀 아니다. 정말 머리에 쥐가 난다. 영어는 정말 힘들다. 레슨을 받아 본 적은 없다. 그냥 대본 받으면 죽어라 그것만 공부해 내 대사로 만들려 애쓰는 것 뿐이다.”

- 미국에서의 유명세는 실감하나

“아직 유명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지 아이 조 2’를 촬영하러 뉴올리언스에 있는 동안 커피숍에 갔는데 몇몇이 모여 날 보고 수근거리더니 다가와 ‘혹시 배우냐’고 묻더라. ‘그렇다’고 대답하며 내심 뿌듯해 했는데 날보고 ‘행오버’ 잘 봤다고 하고 가더라. 아직 갈 길이 멀다.”

- 지 아이 조 2편의 개봉이 늦춰졌다.

“아쉽긴 하지만 3D로 변환돼 나오면 더 재미있고 멋진 영화로 완성될 것이라 확신한다. 팬들도 그렇게 믿고 기다려주시리라 믿는다.”

- 또 다른 할리우드 개봉작이 될 ‘레드2’ 소식도 궁금하다.

“며칠전 최종 캐스팅 소식을 들었다. 브루스 윌리스, 캐서리 제타존스,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 앤서니 홉킨스까지 함께 하게 됐다. 거기서 뭘 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커피 심부름이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9월부터 캐나다와 영국에서 본격적 촬영에 들어갈 듯 하다.돈주고도 배울 수 없는 연기 수업이라 생각하고 성실히 임하고 싶다.”

<안성기>

안성기는 “이렇게 긴장하고 흥분된 적이 없었다”면서도 ‘국민배우’로의 품위와 잃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로 할리우드를 사로잡았다. 그는 “존경했고 좋아했던 배우들과 함께 나란히 발자취를 남겼다는 배우로서 큰 행복을 느낀다”며 “더 좋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겠다”는 각오도 전했다.

- 대한민국 대표 배우 자격으로 할리우드에 핸드프린팅을 남겼다.

“다섯살이었던 1957년부터 연기를 해오며 상도 많이 받아보고 좋은 일 안 좋은 일을 두루 겪어봤지만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 영화를 쭉 해왔던 것에 대한 인정이랄까 치하를 해 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 한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오가는 거리인데 오며가며 손도 한번 대보고 반가워 해 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 감회가 남다를 듯 싶다.

“사실 내가 미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다. 내 영화가 좀 더 소개돼서 더 많은 분들이 얼굴도 알아보고 했다면 좋았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이번 핸드프린팅을 계기로 세계인들도 많이 알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리 약속의 의미로 손도장을 찍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 할리우드 진출을 꿈 꿔본 적은 없나.

“내 경우엔 없다. 분명히 정서가 틀리고 표현 방식이 틀려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엔 아예 완성도 있는 우리 영화로 통째로 소개되는 게 좋겠다고 늘 바라왔다.”

- 할리우드에서 한국영화의 가능성은 어떻게 평가하나

“쉽지는 않은 일이다, 다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있는 유럽에 비해 미국은 오히려 다른 문화권의 작품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더라. 그런 면에서 후배들의 할리우드 도전을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나. 그들을 보면 정말 한국 영화의 위상이 안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고 높아져 있음을 느낀다. 박찬욱, 김지운 감독처럼 직접 나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정말 대단하다 싶다.”

-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뭐라고 보나.

“ ‘힘’이 있는 것 같다. 덜 다듬어지고 투박해도 에너지가 있다. 배우들의 재능과 매력도 각별히 뛰어나다. 보다 완벽한 영화를 만들어 ‘교류’나 ‘진출’을 넘어서, 그들이 우리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수준까지 이르길 바라본다.”

- 한국 영화계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작자가 왜소한 게 아쉽다. 그러다 보니 기획의도가 위축이 되고 눈치를 보게 되고, 그 영향이 배우와 스태프들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그게 걱정이다.”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더 좋은 영화로 더 많은 관객에게 친숙한 배우가 되고 싶다. 연기도 잘하고, 좋은 느낌도 주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예전에 몰랐던 것도 새롭게 느끼게 되고 그냥 지나치던 것들도 다시 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마음 먹기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60이 넘은 지금부터도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지막이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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