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짧은 단발 ‘밥 컷’ 개발, 가위 하나로 여성 해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6호 32면

중앙포토

모발은 인체의 중요한 부분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역사(力士) 삼손은 정부인 블레셋 여인 데릴라의 꼬임에 빠져 머리카락을 자른 후 힘을 못 쓴다. 적에게 잡혀 고초를 겪다가 신의 도움으로 괴력을 회복했다. 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 김홍집 개화 내각은 단발령을 선포했다.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두발로 바꾸라는 칙령이었다. 당시 상투는 효와 계급의 상징이었으므로 백성의 저항이 심했다. 심지어 머리를 자르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세계 미용계 대부 비달 사순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한 우리 모발 산업은 줄잡아 3조원대의 커다란 시장을 이루고 있다. 이·미용실, 모발 관련 화장품, 탈모 방지 약품, 가발, 피부과, 성형외과 모발 시술 등이다. 특히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은 머리카락이 부스러지거나 빠지는 것을 겪는다. 여성은 대머리가 없다지만 이젠 여성 탈모 현상도 심각한 지경이다. 헤어 스타일은 사람의 인상을 좌우한다. 특히 외모가 경쟁력인 요즘엔 머리 모양이 용모를 좌우하기도 한다. 큰 얼굴을 작게, 둥글고 퍼진 얼굴을 갸름하게 보이게도 만든다.

사재 털어 ‘반유대주의 국제연구소’ 설립
파마한 긴 머리를 틀어 올린 후 핀으로 고정시키는 것은 오랫동안 가장 보편적인 여성 헤어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한 남성 미용사가 이 고전적 헤어 스타일에 도전했다. 비달 사순(사진)은 이른바 ‘밥 컷’(Bob Cut)을 창시한 미용계 선구자였다. 1928년 영국 런던 동부 교외에서 태어난 그는 혁신적 헤어 스타일을 개발해 귀찮고 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머리 손질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다.

사순의 부모는 모두 세파라디 유대인이다. 아버지는 그리스 데살로니카 출신이며 어머니는 스페인계지만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태어났다. 사순이란 유대인 가계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8 세기부터 유럽 지중해 지역에 본거지를 두었던 사순 가계는 십자군 전쟁 와중에 아시아로 이동했다. 다수는 13세기 인도 남부(오늘날의 뭄바이) 지역으로 이주했다. 일부는 이라크, 이란, 홍콩, 상하이 등지에 정착했다.

아버지가 외도로 집을 나가는 바람에 사순은 어린 시절 시나고그(유대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라며 유대식 교육을 받았다. 한때 프로축구 선수를 꿈꾸었지만 경제 사정으로 정규 교육을 포기하고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14세 때 당시 영국 최고의 유대인 미용사 아돌프 코헨의 견습생으로 미용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견습이지 실은 미용실 청소와 머리 감기기가 일의 전부였다. 한참을 지나서야 가위질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틈나는 대로 런던의 박물관,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예술적 감각을 익혔다.

20세가 되던 해인 48년 사순은 이스라엘로 떠났다. 그해 있은 이스라엘 건국 직후 터진 1차 중동전에 자원 참전했다. 종전 후 런던에 돌아온 그는 54년 메이페어 본드 가에 첫 미용실을 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자신의 독창적 헤어스타일을 고안했다. 성실하고 손재주가 좋은 그의 머리 손질 기술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다.

63년 사순은 그의 평생 역작이며 독창적 브랜드인 ‘밥 컷’을 선보였다. 일명 ‘사순 컷’으로 불린다. 전통 헤어 스타일을 무시한 혁명적인 것이었다. 평범한 단발머리를 기본형으로 개개인의 얼굴 윤곽에 따라 기하학적 형상을 가미한 단정하고 활력 있는 헤어 스타일이다. 사순은 여성의 머리카락을 섬유와 같은 디자인 재료로 보았다. 또 헤어 스타일은 머리카락 길이에 관계없이 여성의 두상과 골격에 맞춰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이제 뜨거운 헤어 롤러 세트와 컬 핀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밥 컷은 외모는 물론 생활과 사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시대 조류와도 맞아떨어졌다. 오래 집에서 가사에만 전념했던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진출을 시작한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려면 장시간 경대 앞에 한가하게 앉아 머리를 손질할 시간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젠 밥 컷 덕택으로 그저 짧은 머리를 감고 말린 후 간단히 손질하면 그만이다. 밥 컷은 결국 여성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 됐다. 사순은 밥 컷을 기초로 한 ‘파이브 포인트 컷’과 흑인 머리에서 영감을 얻은 ‘그리스 여신’ 등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속속 내놓았다.

고아원 시절 배운 창의력 교육의 힘
사순의 밥 컷은 많은 유명 인사에 의해 급속히 확산됐다. 배우 미아 패로, 글렌다 잭슨, 미니 스커트의 창시자 매리 퀀트와 모델 트위기(본명:레슬리 로슨), 가수 린다 론스타트, 미레이유 마티유, 빅토리아 애덤스(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부인) 등은 사순 컷의 자발적 홍보요원이었다.

사순은 65년 뉴욕에 미용실을 내면서 미국에 진출했다. 이어 미국 서부, 캐나다, 독일 등에 수십 개의 지점을 냈다. 주요 도시에 미용 아카데미를 개설해 후진을 양성했다. 그의 이름을 딴 샴푸, 린스 등 모발 제품도 출시됐다. 열렬한 시온주의자인 사순은 82년 사재를 기부해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 ‘비달 사순 반유대주의 국제연구소’를 설립했다. 말년에 미국에 귀화해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사순은 백혈병으로 지난 5월 9일 세상을 떠났다.

사순은 가위 한 자루로 미용의 혁신을 일으켰다. 기능적인 성격의 머리 가꾸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체계적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 유대 고아원에서 배운 창의력 교육을 자기 분야에 응용했다.

우리와 유대인 간엔 문화적·정서적 공감대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유대인의 강점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오늘날 소수의 인구로 막강한 국제 유대 파워를 구축한 핵심 원동력인 창의력 교육만은 반드시 배울 필요가 있다. 몇 세대가 지나야 실현 가능한 장기적 과제이긴 하지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