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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갯벌 1m씩 나눠 유물 찾기 … 중국·일본도 배우러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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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수중문화재 발굴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발굴팀이 태안 마도 해역에 침몰한 고려시대 선박에서 나온 도자기의 흙을 제거하고 있다.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그럼 지금부터 제토(除土)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수심 5m 바다에 잠수 중인 잠수사 박용기씨가 바지선 위 컨트롤 박스로 사인을 보냈다. 진공흡입펌프를 작동하자 굵은 호스를 타고 갯벌 진흙이 처리기 안으로 콸콸 쏟아져 나온다. 갯벌 속에 감춰져 있는 유물을 발견하기 쉽도록, 바닥의 흙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12일 오전 8시 충남 태안군 마도 인근에 정박하고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바지선 위. 연구소 발굴팀과 전문 잠수부들이 배 위를 분주하게 오간다.

 태안 마도 해역은 수심이 얕고 물살이 강해 과거 배들이 자주 난파되는 장소였다. 2007년부터 태안선, 마도 1·2·3호선으로 이름 붙여진 고려시대의 선박과 고려청자 등의 유물이 잇따라 발견됐다. 발굴팀은 지난 5월부터 새 ‘보물선’이 될 ‘마도 4호’를 찾고 있다.


물속 진흙을 제거하는 특수장비인 진공흡입펌프(사진 위)와 마도 4호선 탐사 중 발견된 도자기 파편들.

 ◆고려시대 보물선=수중 문화재 발굴은 까다롭다. 일반 문화재 발굴에 비해 면적당 비용이 10배 이상 든다. 유물을 발견했다는 어부나 다이버들의 제보가 들어오면 특수장비를 이용해 대상 해역을 조사한다. 해상 작업공간이 될 바지선을 정박한 후 각종 장비를 설치한다. 해당 지역을 가로 1m, 세로 1m 구역으로 나누고, 구역별로 유물을 찾아 나간다.

 마도 발굴 책임을 맡고 있는 양순석 학예연구사는 “물속 시야가 1~2m 정도 밖에 안 된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조류가 센 날은 하루 종일 뒤져도 몇 구역 이상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배의 파편이나 도자기 등이 발견되면 가까이에 배가 있다는 신호지만, ‘공치는’ 날이 부지기수다.

 오전 11시 30분, 오전 작업을 마친 발굴팀이 고무보트를 타고 태안군 근흥면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보존센터로 향한다. 마도 2·3호선에서 나온 유물들의 보존처리를 위해 지난해 완공된 건물이다. 물에 잠겨있던 문화재는 공기와 접하면 급격히 부식되기 때문에 발굴 후의 작업도 조심스럽다. 수중발굴담당 노경정씨는 “이물질과 염분을 제거하고 이를 경화 처리해 건조하는 과정까지 마치려면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아시아 최고 기술=1976년 전남 신안에서 14세기 중국 무역선이 발굴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수중 문화재 발굴 역사는 36년에 이른다. 그간 태안과 완도·진도 등 서해안 유역에서 12척 이상의 침몰선을 인양했다. 현재 아시아에서 수중 문화재 발굴이 가능한 나라는 한국·일본·중국·호주 정도. 그 중 한국의 기술은 최고 수준이다. 물 안의 잠수부와 대화할 수 있는 컨트롤 박스, 갯벌제거용 진공흡입펌프 등은 국내에서 개발한 특수장비다. 2006년 11월에는 아시아 최초로 수중문화재 조사 전용선인 씨뮤즈호가 건조됐다. 올해 말에는 290톤급 대형 발굴전용선인 누리안호도 진수될 예정이다.

 관련 기술을 배우려는 외국 전문가들의 발길도 계속되고 있다.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의 직원 둘이 태안에 한달 간 머물며 발굴작업을 배우고 있다. 12일에는 중국 칭다오(靑島)문물국 공무원과 일본 TBS 방송 제작진이 바지선을 찾았다. 일본 나가사키현 다카시마 인근에서 1281년 태풍으로 수몰된 원나라 군대의 난파선을 조사 중인 류큐대학의 이케다 요시후미 교수는 “한국의 수중 문화재 발굴 기술은 일본보다 앞서 있다”며 “앞으로의 발굴 과정에서 한국의 사례를 많이 참고하려 한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수중 탐사가 끝났다. 잠수사 네 팀이 차례로 바다 속을 뒤졌지만 도자기 파편 몇 개만 건졌다. 하지만 발굴팀은 태연하다. “작업 자체가 참을성과의 싸움이니까요. 새 배의 흔적이 조금씩 확인되고 있어요. 조만간 놀라운 보물이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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