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수길 칼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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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수길
주필

우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 맨날 지지고 볶고, 속 터지는 일들이 수두룩한 나라에서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아니다. 멀쩡한 사실이다.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현 정권 심판을 외치는 나라에서 무슨 의도냐고? 아니다. 여야와 관계없이 있는 대로 볼 건 보아야 한다. 눈을 나라 밖으로, 전 세계로 돌리면 실로 우리나라의 좋은 점들이 많이 보인다.

 산. 물. 전기. 의료. 교통-.

 무작위로 나열했는데도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 산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이다. 물·전기는 우리가 만들어 쓰고 있는 자원이다. 의료·교통은 우리가 만든 시스템이다.

 광주 무등산, 부산 금정산, 서울 북한산 하듯 세계 어디에도 곳곳 대도시 가까이에 이런 편안한 자연이 자신의 굴곡을 넉넉히 내어주고 있는 나라는 없다. 물·전기를 이처럼 싼값에 펑펑 쓰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우리의 건강보험 시스템은 세계의 웬만한 나라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수준이다. 전철·버스가 이렇게 편리하게 연결되면서 대중교통 요금이 싼 나라는 우리 말고 찾기 힘들다.

 세상 살면서 나쁜 점만 보자면 한이 없고, 좋은 점만 보기로 하면 눈이 먼다. 그래도 내친김에 우리나라 좋은 점을 하나 더 보자면, 그중 으뜸이 국가 신용등급이다.

 그래프에서 보듯,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는 신용등급이 올라갔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같은 기간 신용등급이 올라간 나라는 우리 말고 호주·칠레·체코·이스라엘·터키 등 다섯 나라뿐이다. 많은 나라는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월드컵 경기였다면 엄청 환호할 일이다. 반대로 만일 코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졌다면? 우리네 삶에는 크든 작든 쓰나미가 덮쳤을 것이었다.

 왜 코리아는 신용등급이 올라갔을까. 딱 두 가지, 성장과 재정이다.

 우선, 아·직·은 우리 경제 성장이 상·대·적으로 괜찮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분석을 보면 2005년 이후 2011년까지의 성장 실적이나 올해 이후 2017년까지의 성장 전망에서 코리아는 일본·유럽연합·미국을 다 앞선다. 선진국들과 성장률을 비교해 1%포인트 이상 높으면 그건 큰 거다.

 재정은 여·전·히, 단·연 돋보인다. 그래프에서 보듯, 우리의 나랏빚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아주 건전한 수준이다. 무디스는 이를 평가하면서 ‘실탄이 풍부하다(room for maneuver)’라고 했다.

 자, 우리나라 좋은 나라인가?

 수명은 늘어나는데 아이는 낳지 않아 늙은 나라로 돌진하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좋은 일자리가 자꾸 더 생기지 않아 생활이 안 되는 비정규직과 문 닫는 자영업의 문제가 켜켜이 쌓여온 나라.

 국가는 빚 부담이 적다고 평가받는데 저소득층의 빚 부담은 계속 늘어나는 나라.

 박정희 독재를 겪은 사람들이 보면 고양이 앞의 쥐 격인 ‘이명박 독재’를 못 참겠다고 분출하는 나라.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체제인 북한이 어쩔 수 없는 핏줄이자 이웃인 나라.

 이런 나라를 놓고 대통령을 자임하는 후보들을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할까.

 총선 이후 야권 후보들도 복지와 함께 성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좋은 조짐이다. 성장 담론 없이 집권을 이야기할 수 없고, 복지는 성장과 부딪쳐 싸워야 할 팔자가 애초부터 아니었다. 지금 복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처지도 역대 정권이 지켜온 성장과 재정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왜 진작 안 했느냐고 하겠지만 또 한편으론 그래서 지금 전 세계의 경제 위기 속에서 유독 ‘실탄이 풍부한 여지’가 있다. 그 역대 정권은 이명박·노무현·김대중·김영삼·노태우·전두환·박정희 정권이었다. 어느 한 정권이 받아갈 훈장이 아니다. 다 이바지했다. 이제 너도나도 복지를 이야기하는데, 당연히 그래야 하고 또 모두 다 솔깃할 것이다. 다만, 간단한 기준 한 가지만 갖고 판단하자. 그리스처럼 나라를 들어먹으면 그게 한계다. 이번 대선 공약에서 누가 무슨 이야기를 속삭이는지 그 기준에서 엄밀히 보자.

 마찬가지로 고령화도, 가계 부채도, 양극화도, 일자리도, 남북 분단도 모두 발등의 불인데, 그러고 보니 이 나라 참 문제 많은 나라다. 여느 나라들처럼. 올해 대권 후보들의 공약은 결국 비슷비슷해질 것이다. 좌우가 퇴색하면서. 그건 바람직하다. 다만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미래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미래상이다. 산·물·전기·의료·교통·성장·재정·신용등급…. 이런 좋은 점들을 지키거나 더 좋게 할 미래다. 결국 국가의 틀이다. 유권자들은 그것을 보고 찍을 것이다. 신용등급? 돈 꿔주고 떼어 먹힐 염려가 적다는 얘기다. 우리 미래가 절실한 것은 투자다. 다음 글 자리에선 투자와 일자리를 이야기하자.

김수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