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선 한석규도 안부러워" 임원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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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희(31).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영화배우다. 약간 과장하면 한석규 ·송강호가 별로 부럽지 않다. 그만의 고정팬이 많이 생겼기 때문. 그가 주연한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http://www.cine4m.com) 덕분이다.

지난해 12월 12월 개봉한 '다찌마와 리'는 현재 조회수가 1백30만회를 돌파했다. 그가 출연한 다른 인터넷 영화 '커밍 아웃'의 조회 또한 70만회를 넘어섰다. 일반 상영영화로 치면 관객 2백만명을 동원한 셈이다.물론 인터넷 영화의 특성상 관객이 겹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수치다. 특히 '다찌마와 리'의 게시판엔 2천건이 넘는 각종 감상문이 올라와 영화의 열기를 짐작케 한다. 80% 가량이 "정말 영화를 재미있게 즐겼다"는 긍정적인 평가다.

#1 인터넷아 고맙다

임원희의 오늘은 사실 인터넷에 큰 신세를 졌다. '기막힌 사내들'에서 경찰역, '간첩 리철진'에서 멍청한 강도역,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칼에 맞아 죽는 형사역 등 예전에도 개성있는 조연으로 출연했으나 '다찌마와 리'에서 물을 만난 형국이다.

"사실,제 얼굴을 보세요. 일반영화에서 주연을 하겠습니까. 인터넷이 고마울 뿐이죠. 30분짜리 짧은 영화지만 혼신을 다했습니다."

'다찌마와 리'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유승완 감독이 6천만원을 들여 만든 액션 코미디. 1960∼7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과장된 몸짓, 잔뜩 힘이 들어간 문어체 대사, 정의를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나이의 의협심 등을 패러디하며 배꼽이 빠지게 우스꽝스런 장면을 연속해 토해낸다.

여기에서 임원희는 시골에서 상경한 처녀들을 불한당으로부터 보호하는 '인간 미화원'을 매끈하게 소화했다. 제목의 '다찌마와리'는 액션·활극을 뜻하는 일본식 영화 은어다.

"사실 저는 인터넷을 잘 몰라요. e-메일을 주고 받는 수준이죠. 집에도 386 컴퓨터 밖에 없어 동네 PC방이나 영화사 사무실 등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관객의 반응을 알아보곤 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새 인터넷 영화의 매력에 빠져든 것 같다. 그를 영화계의 '언더 스타'로 키워준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한 모양이다.

"인터넷 영화는 일단 저예산 영화입니다.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만들 수 있지요. '다찌마와 리'도 그렇습니다. 불과 이레 동안 찍었지만 준비를 철저히 해 신속하게 마칠 수 있었지요. 일부에선 그저 웃기는 영화가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동안 단절됐던 한국 액션영화의 맥을 잇는다는 의미를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2 자유롭게 놀자

출연료가 궁금했다. 혹시 영화가 터져 돈을 벌었는지도 물었다.그가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꼭 밝혀야 하나요. 3백만원 정도 받았어요. 영화관람 자체가 무료니까 저에게 돌아올 것도 없구요. 그리고 배우는 돈을 위해 영화를 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은 따라오는 게 아닌가요."

그는 자유로움을 강조했다. 특히 인터넷 영화의 특성상 기성영화의 관습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과 몸짓을 내세웠다. 저예산 영화라 배우로서 불편한 점이 많았을 것 같다고 묻자 오히려 반대라고 대답했다.

"흥행에 대한 부담이 일반영화에 비해 적어 오히려 몸이 가벼웠어요. 스태프도 많지 않기 때문에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죠.일종의 게릴라 집단이라고 할까요. 저예산이란 단점도 활용하기에 따라 장점이 됩니다. 또 제작자 눈치를 볼 필요가 적어 연기도 훨씬 편했어요. 제가 마음껏 놀 수 있는 멍석이 차려진 셈이죠. 내 안에 숨겨진 모든 것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지금까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던 무술을 3주 동안 배우고, '돌아온 항구의 사나이' '뒤돌아 보지 말라' 등 60∼70년대의 액션영화 수십편을 연구했다고 덧붙였다. 박노식·장동휘·독고성·이대근 등이 모델이 됐다고 한다.

"작은 영화라고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이런 작품들이 활발하게 만들어지면 그만큼 우리 영화의 폭이 넓어지지 않겠어요? 이젠 배우들도 스타만 선호하는 일반영화를 탓할 필요가 없어요.인터넷의 확산으로 연기력만 갖추면 예전보다 훨씬 쉽게 관객과 만날 수 있거든요."

'다찌마와 리' 덕분에 그는 요즘 햄버거 광고에 나오고 있다. 또 한 신용금고회사의 CF촬영도 마쳤다고 한다.자본주의의 총아인 광고에서도 그를 초청할 만큼 유명인사가 된 것.
잘 찍은 인터넷 영화 한 편, 일반 영화 열 편 부럽지 않죠. 물론 다 감독이 잘했기 때문이겠죠."

#3 내 색깔을 찾자

임원희는 영화 속의 호쾌한 사나이와 달리 실제론 무척 신중하고 쑥스러워 했다. 영화배우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다찌마와 리'같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을까. 대답이 재미있다.

"코미디는 진지해야 합니다. 특히 고급 코미디는 상황 자체가 우수운 까닭에 연기자는 그 상황에 충실해야 합니다. 배우의 개인기로 웃기는 게 절대 아니죠.”

인터넷 영화의 가능성을 물었다. 그는 "제가 전문가도 아닌데 뭐 그런 질문까지"라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분명 활성화할 겁니다. 특히 영화학도·신인감독 등의 활동무대가 넓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죠. 다양한 색깔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텃밭이 될 것입니다. 일반영화에선 보기 어려운 독창적인 소재·주제,실험적인 촬영기법 등이 살아나기를 기대합니다.”

이쯤 되면 거의 인터넷 영화 예찬론자? 하지만 그는 이같은 규정에 반대했다.

"인터넷이든, 필름이든 배우에게 매체 구분이 무의미합니다. 오직 배우로서 남는 것뿐이죠. 묵묵히 실력을 쌓으면서 기다리면 결국 문은 열리기 마련이죠. 다른 배우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무엇을 키워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제법 속이 찬 발언이다. 사실 그의 출발은 연극무대였다.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한 연극연출가 오태석씨의 극단 목화에서 1995년 연기생활을 시작해 10여편의 연극에서 기본기를 다졌다.

“영화판에 들어간 이상 부디 성공하라”는 스승 오씨의 말을 좌우명 삼아 하루하루 정진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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