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소비·투자 심리 장밋빛으로 도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지난해 12월 말까지만 해도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조짐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불과 한달여 만에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소비에서 경기회복 신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2월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하던 심리지표가 3월 들면서 급격하게 호전되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소비자동향조사(CSI)'를 보면 6개월 후 생활형편에 대한 전망 CSI는 100을 기록해 2002년 3분기(101) 이후 10분기 만에 100선에 올라섰다. CSI는 100을 기준으로 숫자가 높아질수록 앞으로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응답이 나빠질 것이란 대답보다 많다는 것이고, 100 아래로 내려가면 그 반대다. 하지만 소비.투자 등 내수 실적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지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실업률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이처럼 실물지표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기업.가계의 심리가 빠르게 호전되고 있는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경기 바닥 심리=경기 순환주기로 보면 지금의 경기 하강기는 2000년 8월부터 시작됐다. 무려 4년7개월째 경기 내리막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직전 하강기 2년5개월, 그 이전 1년에 비해 2~4배 긴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연구위원은 "경기 침체가 과거보다 훨씬 길고 깊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는 심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 때문에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약간의 신호에도 강한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지난해 초 심리지표가 '반짝' 호전됐던 것도 바닥 심리의 작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가계의 소비 여력 회복=지난해 연말 시중에 풀린 3조원 규모의 대기업 상여금이 '펌프에 부은 첫 한 바가지 물'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혼수 특수도 작용했다. 지난해 봄 결혼 시즌엔 윤달(3월 21~4월 18일)이 겹친 데다 '윤년에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징크스 때문에 혼수업계가 타격을 입었다. 미뤄진 결혼이 올 초 집중되면서 백화점마다 가전제품.남녀정장.모피 등 혼수용품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주가 상승도 소비 여력 회복을 거들었다.

2002년 카드 소비 거품이 꺼지면서 가계가 떠안은 빚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연구위원은 "실질소득이 계속 증가하는 동안 가계는 소비를 극도로 억제해 빚 조정이 이뤄졌다"며 "지난해 말부터 가계대출이 늘고 신용카드 이용액이 늘기 시작한 게 이를 방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계 전체로 보면 아직은 소비 여력이 완전히 살아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용이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 숫자도 감소 추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아직도 360만 명이 넘는다.

◆ 정부의 분위기 조성=경제에 '다 몰아주겠다(올인)'고 한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 변화도 한몫했다. 본지가 이달 초 학계와 업계 전문가 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심리지표 회복의 원인으로 '정부의 경제 올인 정책'을 꼽은 사람이 24.4%로 둘째로 많았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시종일관 경제 얘기만 한 노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 기업에 미친 심리적 안정 효과는 예상보다 컸다"고 설명했다.

◆ 전망은 아직 엇갈린다=심리 호전의 속도가 이미 일정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지난해 3~5월과 같은 반짝 회복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금융연구원 박 연구위원은 "심리 호전이 몇 달만 더 지속되면 그동안 투자를 외면해온 내수기업도 설비 확충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 윤의정 경제통계국 부국장은 "아직은 심리만 호전됐을 뿐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정경민.김동호.김원배 기자

*** 한은 1분기 소비자 지수 100 … '급반전' 이유는

(1)"더 나빠질 것 없다" 바닥심리 작용

(2)대기업 연말상여가 경기 펌프 역할

(3)올들어 주가 오르고 카드빚도 대충 정리

(4)노대통령 '경제 올인'발언도 한몫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