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가 요만해 … 평생 농사 지었지만 이런 가뭄 처음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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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충남 서산시 팔봉면의 한 밭에서 수확 중인 양파. 가뭄 탓에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옆 그물망에 담긴 정상 양파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다. [서산=프리랜서 김성태]

18일 오전 11시 충남 서산시 팔봉면 대왕리의 밭에서 일하던 김용희(75) 할머니는 근심에 찬 얼굴로 양파를 한 움큼 내밀었다. 김 할머니 손에 들린 양파는 크기가 작은 감자만 했다. 흙이 말라 양파를 캐낼 때마다 뿌연 먼지가 날려 김 할머니는 연신 마른기침을 토해 냈다. 김 할머니는 “맛은 그대로지만 씨알이 작은 양파만 보면 입맛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근 어송리 성한국(55)·김기숙(53)씨 부부의 감자밭. 줄기를 걷어내고 마른 흙을 파보니 아이 주먹만 한 감자(지름 5㎝)가 힘없이 달려 나왔다. 밭에 물기가 없어서다. 수확량도 크게 줄어 예년에는 20㎏들이 씨감자 한 상자를 심으면 40상자(20㎏들이)를 수확했지만 올해는 25~30박스로 줄었다. 더 큰 문제는 크기다. 씨알이 굵어야 제값을 받는데 수확량 가운데 절반이 4등급인 중급이다. 중급 가격은 왕·특대의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엔 90% 이상이 1~2등급(왕·특대)이었다. 가격은 20㎏(특대) 기준으로 1만원가량 올랐지만 등급이 떨어지면서 수입은 줄었다. 성씨는 “수확 한 달 전에는 비가 내려야 씨알이 굵어진다” 고 말했다.

 오랜 가뭄으로 농가가 비상이다. 밭작물이 말라 죽고 논바닥마저 갈라져 농민들이 애를 태운다. 서산농협 팔봉지점에서 만난 칠순의 농부는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처럼 가물어서 힘든 적이 없다”고 호소했다. 팔봉면은 물이 부족해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이 59㏊로 서산시 전체 면적 130㏊ 중 45%나 된다. 서산의 5월 이후 강우량은 18.5㎜로 평년의 20%에 불과하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하루 종일 소방차로 물을 대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가을에 수확할 쌀이 얼마나 될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16일 경기도 화성시는 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중장비로 하천 바닥을 걷어내며 물길을 만들고 있다. [뉴시스]

 산불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5~6월 전국 산불은 15건이었으나, 올해는 5월 이후 73건이나 났다. 6월 들어서만 19건이 발생해 크고 작은 피해를 봤다. 공업용수도 비상이다.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용수 확보를 위해 공급처를 변경했다. 단지 내 5개(삼성·LG·현대오일뱅크 등) 업체는 5㎞ 거리에 있는 대호지에서 공업용수(하루 18만t)를 공급받았으나 저수율(18일 현재 23%)이 떨어지자 15일부터 70㎞나 먼 아산호에서 물을 공급받고 있다. 1991년 설립된 대산단지가 대호지 이외의 물을 쓰는 건 처음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당분간 가뭄 해소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이날 농촌에 50억원을 추가 지원(총 125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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