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열며] '틀린' 생각과 '다른' 의견

중앙일보

입력

얼마전 수염이 텁수룩하게 난 사람을 만났다.“왜 수염을 기르느냐”는 물음에 그는 “나는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어리둥절해하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저는 면도를 하지 않을 뿐입니다.”

‘수염을 기른다’와 ‘면도를 하지 않는다’는 같은 말인 것 같지만 다른 말이다.분명한 시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말은 생각에서 나온다.그러나 때로는 말이 생각을 지배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네 생각은 내 생각과 틀리다”는 말을 한다.그러나 네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틀린’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다른’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오히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내 생각과 ‘다른’사람을 통해 깨달을 수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토론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바로 이런 언어 습관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내 생각과 ‘틀린’ 사람은 고쳐야 하고,따라서 타도 대상이 된다. 많은 분야에서 토론의 장이 때때로 욕설이 난무하는 다툼의 장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일 앞에서 예로 든 털보에게 “말장난하지 마라. 면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틀린 말이고 너는 수염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강요하려 든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다. 여론은 급속도로 전파되고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의견도 올라온다. 그러나 곧 온갖 욕설과 비방이 화면 가득 뜬다.나와 ‘다른’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화제다.“역시 외국인 감독이 맡으니 확실히 달라졌다”느니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느니,“비판하지 말고 확실히 밀어주자”느니 “지금부터라도 짚을 건 짚어야 한다”느니 말들이 많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역시 선수 문제다.“왜 이 선수를 대표선수로 뽑지 않느냐”와 “이 선수는 제발 좀 빼라”는 게 주된 논란이다.아무래도 특정 선수 팬클럽 회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지만 일반 축구팬들도 이 부분에서는 양보를 하지 않는다.축구에 관한 한 나름대로 전문가 수준에 올라 있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자기 주장에 대한 근거를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토론을 이끌려고 하는 사람도 곧 욕설에 파묻혀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한다.안타까운 일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차범근 전 대표감독은 특정 선수를 왜 기용하지 않느냐는 전화 공세에 시달렸다.거의 협박이었고 욕설이었다.나중에는 전화를 받지 않으니 기자를 사칭해서 전화를 한 후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히딩크 감독.그는 여건이 좋다.한국이 공동개최하는 2002 월드컵 축구 16강 진출을 위해 정부까지 나서서 모셔온 외국인 감독이다.요즘에는 오히려 히딩크 감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발붙이지 못하는 분위기다.16강 진출을 위해서는 일사불란하게 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조금이라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곧바로 욕설이 날아든다.

그러나 맹목적인 추종도,절대 반대만큼 바람직하지 않다.쓸데없이 뒷다리나 잡는 비난은 경계해야 하지만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의견은 필수다.제발 욕하지 말고,다른 사람 의견 묵살하지 말고,귀를 크게 열어서 나와 ‘다른’ 의견을 많이 듣도록 하자.

앞으로는 대화할 때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당신 생각은 제 생각과 많이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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