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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알레르기 피해 심각 … 모든 식품 성분표시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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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고기를 먹은 뒤 거울 보기가 두려워진다면(두드러기)? 우유를 마신 뒤 설사를 한다면(유당불내증)? 아기가 가렵다며 심하게 보챈다면(아토피성 피부염)?

 이럴 때 식품 알레르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두드러기·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장에 유당분해 효소가 결핍돼 유당의 분해·흡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나타나는 증상)이 자신과 궁합이 맞지 않는 식품 섭취에 따른 이상반응인 것은 맞지만 식품 알레르기는 아니다.

  최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식품 안전 미디어 워크숍(한국식품안전연구원 주최)에선 ‘식품 알레르기’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워크숍에서 한국식품연구원 손동화 박사는 식품 알레르기를 “‘특정 식품’에 대해 신체의 면역 시스템이 과민하게 반응해 일어나는 증상”이라고 정의했다. 모든 식품이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지만 유독 알레르기를 잘 유발하는 ‘특정 식품’이 문제라는 것이다. 전체 식품 알레르기의 90%는 우유·생선·밀·콩·달걀·땅콩·갑각류·견과류 등 8종이 일으킨다.

 ‘특정 식품’에 존재하면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을 알레르겐이라고 한다. 모든 알레르겐은 성분이 단백질이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은 알레르기를 빈번하게 일으키는 ‘특정 식품’에 속하지만 100% 지방인 콩기름의 경우 알레르기와 무관한 것은 이래서다.

 어릴 때 식품 알레르기로 고생했다가 나이 들면서 괜찮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성인에게 식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특정 식품’은 땅콩·생선·견과류·갑각류 정도다.

 식품 알레르기는 절대 가볍게 취급할 병이 아니다. 영·유아의 6∼8%, 성인의 1∼2%가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2010년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식품 위해정보 1만4530건 중 11%가 식품 알레르기 관련 신고였다. 두드러기·가려움증·천식 등 다양한 증상을 일으킬 뿐 아니라 심하면 쇼크로 숨질 수 있다. 미국에선 연간 200명 이상이 생명을 잃는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안강모 교수는 워크숍에서 “식품 알레르기의 사실상 유일한 치료법은 회피요법(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며 “면역요법도 일부 시술되고 있지만 제대로 확립된 치료법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식품 알레르기 예방법은 이론적으론 간단하다. 환자 자신이 어떤 ‘특정 식품’에 민감한지를 미리 알고 지금 섭취하려는 음식에 ‘특정 식품’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 된다. 정부가 각종 가공식품의 라벨에 ‘특정 식품’(식품 알레르기의 주된 원인이 되는 계란·메밀·우유·땅콩·대두·밀·고등어·게·새우·돼지고기·복숭아·토마토 등 12가지 식품)이 포함돼 있는지 표시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이래서다.

 그러나 햄버거·피자·외식·학교급식 등 비(非)포장 음식엔 문제의 ‘특정 식품’이 함유돼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유럽연합(EU) 의회는 비포장 음식에도 ‘특정 식품’의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학기부터 초·중·고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 성분을 매일 알리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바른 결정으로 여겨진다. 어린이집·유치원 급식에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국내에선 ‘특정 식품’이 포함된 사실을 라벨 등에 표시하지 않더라도 리콜(수거·폐기) 대상이 아니다. 반면 선진국에선 식품 알레르기 관련 리콜이 전체 리콜 건수의 50%를 차지한다. “표시 의무를 지키지 않은 식품은 바로 수거할 수 있도록 규정을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는 한국소비자원 하정철 식의약안전팀장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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