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발명하는 그, 김중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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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1F/B1』의 도시는 위태롭지만, 인물들은 긍정적이다. 삭막한 도시에도 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중혁이 일층(1F)과 지하 일층(B1) 사이에서 도시를 응시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김중혁(41)은 말한다. “나는 늘 하고 싶다.” 무엇을? 들어보자. 대체 무엇을 그리 하고 싶은지. “주로 네 가지 욕구에 사로잡혀 지낸다. 진지하게 무언가 질문하고 싶을 때 단편을 쓴다. 시원하게 뻥을 치고 싶으면 장편을 쓰고, 수다를 떨고 싶으면 산문을 쓴다. 사람들을 웃기고 싶을 때? 그럴 때는 만화를 그리면 된다.”

그는 정확히 저 네 가지 모드로 삶을 꾸려왔다. 자주 단편을 쓰고, 문득 장편을 내고, 종종 산문집을 쓰며, 가끔 만화를 그린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질문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세번째 단편 소설집 『1F/B1(일층, 지하 일층)』(문학동네)이 나왔다. 이번 단편집에선 무엇을 묻고 싶었을까. 14일 오후 그를 만나자마자 물어봤다. 물음을 물어보는 물음으로 시작된 요상한 인터뷰였다.

 -이번 소설집에선 무슨 질문을 하고 싶었나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묻고 싶었어요. 대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뭐 그런 질문.”

 도시? 사람들? 김중혁으로선 낯선 테마다. 그의 첫 번째 소설집(『펭귄뉴스』)은 사소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두 번째 소설집(『악기들의 도서관』)은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었다. 도시와 사람들이라면, 그로선 소설의 세계를 작심하고 확장시킨 셈이다.

이 소설집에 담긴 ‘김중혁 시티’는 다채롭다. 정글을 닮은 골목(‘C1+y =:[8]:’), 유리창으로 빼곡한 곳(‘유리의 도시’), 잃어버린 낡은 기억(‘냇가로 나와’) 등이다. 김중혁은 경기도 일산에 산다. 허허벌판에 솟아난 신도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도시들은 일산을 모델로 삼은 것일까.

 “일산에서 떠올린 장면도 많죠. 제가 오피스텔에 살거든요. ‘1F/B1’에 나오는 건물관리자연합은 제 오피스텔 관리자들에게서 착안했어요.”

 이 소설집은 다양한 장르적 코드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예컨대 유리창이 행인들을 덥치는 범죄가 벌어지는 ‘유리의 도시’는 스릴러를 끌어왔고, 버려진 바질 씨앗이 식인 괴물로 변하는 ‘바질’에선 괴수물의 서스펜스가 느껴진다. 그는 “김중혁화 된 장르를 개발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소설가들이 현실을 재현하는 데 몰두할 때, 김중혁은 현실을 ‘발명’한다. 살짝 비현실적인 김중혁표 발명품들이 이 소설집엔 가득하다. 예컨대 ‘C1+y=:[8]:’이란 제목은 어떤가. 이건 시티(City)는(=) 스케이트 보드(:[8]: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사람의 형상이란다)라는 뜻이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인물이 나오니 그렇게 붙였단다. ‘알루미노코바륨’이란 물질(‘유리의 도시’)이나 ‘2009 세계단추박람회’(‘바질’) 등도 그가 발명한 것들이다.

 “익숙한 지명이나 명칭은 상상력을 가둬요. 일상을 비틀어 낯설게 하면 독자들이 소설에 참여할 공간이 생기는 거죠.”

 그러니 우리의 상상력을 제목의 ‘/’에 집중하자. 김중혁은 어떤 사이(/)에서 도시가 숨쉰다고 믿는다. “도시에 존재하는 작은 틈들 때문에 삭막한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희망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김중혁을 발명해야 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김중혁의 단편은 뭐랄까,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문장들을 발명함으로써 삶의 진실을 묻는다. 이 소설집은 “도시는 절대 낡지 않는다. 나만 낡아갈 뿐이다”(‘크랴샤’)는 문장으로 문을 닫는데, 그의 소설은 낡은 적이 없었다. 김중혁에게 소설은 발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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