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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원 넘는 밥값은 징계, 100만원 넘는 금품은 형사처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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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의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안’은 ‘청탁과의 전쟁 법안’이다. 기존의 공직자윤리법·형법에서 정한 처벌 대상과 수위를 한 단계 뛰어 넘었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청탁 금지다. 법안 8조는 본인이 직접 하건 제3자를 통해서건 공직자에게 위법 행위를 하도록 요구·지시하거나, 정당한 직무 수행의 절차를 벗어나도록 압력을 넣으면 모두 부정 청탁으로 간주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청탁 금지 조항은 우리 법에 없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청탁 금지 조항이 있지만 퇴직 공직자가 과거 소속 기관에 부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로 제한돼 있다. 법안에선 처벌 대상에 전·현직 공직자와 청탁에 나선 민간인을 모두 포함시켰다. 실제 2010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중앙 부처의 한 감사팀장이 같은 고향 출신인 출판업자가 정부 부처 인쇄물 용역을 따낼 수 있도록 담당 공무원에게 청탁을 하다 적발됐다.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으로 징계받았는데, 법안이 통과되면 이제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미국의 텍사스·몬태나·메인주에선 공직자에게 위법한 결정을 내리게 하려고 접촉하거나 은밀하게 그런 의사를 전달하면 형사 처벌하는 형법 규정이 있다.

권익위는 청탁에 나서는 실질적인 주체로 고위 공직자·국회의원·지자체장 등을 염두에 둔다. 김영란 권익위원장은 “청탁은 권력과 힘이 있는 이들이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경우 정당한 의견 제시와 부정한 청탁을 구분하는 게 애매하면 미국의 연방획득규정(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s)이 준용된다. 정부의 계약 발주를 앞두고 의원이 해당 부처에 전화를 걸어 특정업체 수주를 권유하면 부당한 개입이다. 그러나 사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공개 서면으로 견해를 전달하면 문제 되지 않는다. 청탁과 견해 표명의 차이는 공식 절차를 따랐는지와 은밀성 여부로 판단받는다.

둘째 부정한 청탁에 자주 등장하는 검은 돈이다. 공무원이 금품을 받으면 형법상 뇌물죄나 특가법상 알선수재로 처벌받는다. 하지만 현재는 금품과 직무 행위 간에 ‘대가성’이 입증돼야 가능하다. 그러나 법안 11조는 처벌 대상이 되는 ‘금품’을 정의하며 “직무 수행과 대가 관계가 있는 경우를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대가성이 없으면 봐준다는 게 아니다. 대가 관계가 있으면 뇌물죄를 적용하고, 대가 관계가 없으면 이 법안으로 처벌한다는 뜻이다. 권익위는 “현재로선 100만원을 넘기면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고, 그 이하는 과태료나 징계 대상으로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설명했다.

단 통상적인 음식물·경조사비·기념품 등은 처벌 예외 대상이다. 이들 예외 조항은 대통령령으로 액수를 정할 방침이다. 공무원 행동강령엔 3만원을 밥값·기념품 등의 접대 상한선으로 정한 만큼 이 기준이 대통령령에 그대로 준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쉽게 말해 3만원을 넘기면 징계 대상이고, 100만원을 넘기면 형사처벌 받는다는 얘기다.

독일과 미국 역시 대가성을 따지지 않는다. 독일의 ‘부패단속법’은 뇌물죄와 이익수수죄가 별도다. 공무원이 돈을 받았을 때 대가성이 있으면 뇌물로 단죄하고, 대가성이 없으면 이익수수죄로 처벌한다. 미국의 ‘뇌물 및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미 연방정부 외에 다른 출처에서 돈을 받을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이다.

마지막은 공무원 윤리 강화다. 부정청탁방지법안은 공직자들이 사익을 챙기지 못하도록 하는 ‘그물망 조항’을 마련했다. 공무원이 자신의 사익과 직결된 정책을 다루거나, 가족이 임직원으로 있는 업체를 상대하는 업무를 맡을 땐 심의·결정 과정에서 빠지도록 했다. 시장·군수가 자기 집 앞에 도로를 낼 땐 이해 당사자인 시장·군수가 심의·결재에서 빠져야 한다. 전관 예우뿐 아니라 ‘후관 예우’도 금지했다. 민간 부문에서 고위 공직자로 채용되면 과거 2년 이내에 재직하거나 자문했던 업체와 관련된 업무를 맡지 못한다.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소속 기관이나 산하 기관에 자녀를 특채시키는 것도 금지 대상이다. 지자체장이 공무원을 가사 도우미로 써도 처벌받는다.

채병건·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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