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다시 읽기]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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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아우르는 숱한 용어의 우주에는 '커뮤니케이션' 혹은 '미디어 문화' 라는 별이 있다.

혹시 이 별을 보고 그려지는 인물과 책이 없으신가.

아마 많은 이들은 '미디어 문화론' 의 왕별, 마셜 맥루한(1911~1980) 을 떠올리고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 』를 그려봄직하다.

1964년에 초판이 나왔을 때 이 책은 문고판의 크기에 비하면 기념비적으로 부풀려진 거대한 찐빵과도 같았다.

왜냐하면 80년대 말까지도 사람들은 미디어를 이해하는 데 굶주려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은 맥루한이 쪄낸 큰 찐빵이 필요했고, 최근까지도 그것을 일컬어 "전자 시대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예언서" 라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크지는 않지만 찐빵의 진수인 단팥 맛을 제대로 보고 싶으면 다음 저자의 책을 주목하기 바란다.

월터 옹(1912~?) 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1982년) . 어느덧 고전이 되어버린 이 책의 가치는 맥루한 보다 훨씬 더 깊은 지점에서 미디어를 이해하게 하는 데 있다.

아마도 저자가 예수회 소속 신부학자인 탓에 '고도로 내면화된 의식 수준' 에서 미디어를 성찰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인간 개인이 우주 속에서 자기 자신을 느끼는 방식은 어떤 특정한(미디어의) 형태에 의해 진화해 왔다" 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타고난 말의 속성 '구술성' 과 후천적으로 획득된 글쓰기 기술의 속성인 '문자성' 사이에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는 것이다(2백65쪽) .

옹은 이 둘 사이에서 지식이 다뤄지는 방법과 그 표현방법상에 어떤 정신적 차이가 있는지를 규명하려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그는 "말과 글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미디어" 라고 단언하며(11쪽) , 글을 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말을 공간에서 멈추어 시각화하는 일로 간주한다.

그러나 언어 표현이 전자화함에 따라, 필사문화와 인쇄문화의 영향을 받은 '말' 의 공간화(시각화) 는 더욱 강화되고, 마침내 '2차적 구술성' 의 시대로 문화적 의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2백4쪽) . 여기서 2차적 구술성이란 과거 필사와 인쇄를 모두 포함하면서도 쓰기 이전의 의식을 담고 있는 말과 감각을 지닌 전자시대의 언어적 특성을 뜻한다.

인간문화사에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역사적 단계는 최초의 '구술문화' 에서 '쓰기문화' 로, 쓰기를 보편화한 '인쇄문화' 로, 그리고 쓰기와 인쇄의 기반 위에 세워진 '전자문화' (맥루한은 '전기시대' 라 부름) 로 향해갔다는 것이다(11쪽) .

예를 들어, 최근 인터넷과 전자우편이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그것은 감탄사와 의성어 같은 구어체의 문장뿐만 아니라 키보드로 이루어진 각종 감정표시 부호들(예: 반가움 ▶▶) , 소리, 동영상이 어우러진 잡종형태의 이미지 정보를 실어 나른다.

정보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점차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심지어 디지털로 변환시킨 맛과 냄새에도 열려지고 있다.

이른바 특정 감각의 희생이나 종말이 아닌 전자적 다중매체와 감각의 세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옹은 한 살 위인 맥루한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고전학, 영어학, 언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대가였다.

그는 또한 과거 아날로그 인쇄문화는 물론 디지털 전자문화에서 시각정보전달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그래픽디자인.타이포그래피.편집디자인에서 활자(텍스트) 와 공간(지면) 의 관계를 정교하게 설명해준 인물로도 소중하다.

옹 덕택에 우리는 인쇄문화를 거쳐 이제 막 2차적 구술성으로 통합되고 있는 전자문화, 즉 이미지 시대를 이해하는 미세한 촉수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문화의 도래 때문에 학문의 위기가 왔다고 호들갑 떠는 분이 계시다면, 스스로 "나는 15세기 구텐베르크의 노예요" 라고 간증하는 격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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