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영웅의 판정패에 필리핀 전역 '눈물바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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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 필리핀 국민들은 숨을 죽이며 한 권투선수의 경기중계를 지켜 봤다. 하지만 이들의 침묵은 이내 한숨으로 바뀌고 말았다.

필리핀의 '복싱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매니 파퀴아오(33)가 미국 라스베거스 MGM그랜드아레나 특설링에서 열린 국제복싱기구(WBO) 월터급 타이틀 매치에서 미국의 신예 티모시 브래들리 주니어(28)에게 1-2의 판정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7년 동안 15연승을 달리던 파퀴아오는 이번 패배로 통산 전적 54승2무4패(38KO)가 됐다.

동양인 최초로 8체급 석권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파퀴아오는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고 도전자를 몰아 부쳤다. 왼손잡이 파퀴아오의 잽과 스트레이트가 폭발하며 도전자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심판의 채점 결과는 경기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거리와 광장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던 필리핀 국민들은 "챔피언 벨트를 도둑 맞았다" "날강도 같은 짓이다"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MGM그랜드아레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미국 관중들도 심판의 판정 결과가 발표되자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AP통신을 비롯한 현지 언론들이 매긴 자체 채점에서도 파퀴아오가 5~6점 차로 앞선다는 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하원의원이기도 한 파퀴아오는 필리핀에서 '인생역전'의 신화이기도 하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바람난 아버지의 가출로 어려운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12살부터 권투를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16살 때 프로에 입문한 그는 플라이급을 시작으로 슈퍼페더급, 라이트급, 웰터급, 슈퍼 웰터급 등 8체급 석권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필리핀의 정신적 지주'로 통하는 그의 경기 시청률은 한때 63%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파퀴아오의 프로모터인 밥 애럼은 경기가 끝난 뒤 "복싱이라는 스포츠에서 오늘 밤처럼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고 독설을 날렸다. 파퀴아오는 오는 11월 도전 의지를 밝혔다. 안지은 리포터 [AP=연합,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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