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총싸움 뮤직비디오 이제 그만

중앙일보

입력

야외 결혼식. 신부의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신부를 포옹하는 순간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한 킬러가 그를 저격한다. 가면을 벗고 유유히 현장을 떠나는 킬러는 젊은 미녀. 이어 주인공의 추적이 시작된다.

신인 남자 가수 얀의 노래 '애프터' 의 뮤직비디오다. 여배우 이지현을 주인공으로 멕시코에서 촬영한 이 작품은 지난해부터 부쩍 늘어난 일명 '총싸움' 뮤직비디오의 한 전형이다.

가요 뮤직비디오에 총과 피가 난무하고 있다. 인기 그룹 god의 신곡 '니가 필요해' , 이 비디오와 스토리가 같은 차태현의 '아이 러브 유' 에서는 출연하는 god 멤버들이 모두 총을 들고 나온다.

지난해 발표한 뮤직비디오 중 주영훈의 '노을의 연가' , 유승준의 '찾길 바래' , 조장혁의 '중독된 사랑' , 김민종의 '왜' 등 주목을 끈 작품에선 어김없이 총과 피가 선보였다.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조성모의 '아시나요' 는 대규모 전투 장면이 주를 이뤘고,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승환의 '그대가 그대를' , 김성집의 '기약' 도 주인공이 총을 들고 나왔다.

왜 가요 뮤직비디오에 총과 피가 단골로 등장할까. 가사와는 무관한 한편의 드라마같은 작품들이 유행하면서, 짧은 시간에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서는 강한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은 또 해외 촬영, 유명 배우 대거 출연, 수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제작비 투입 등 공통점이 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면 실감이 나지 않고, 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유명 배우가 필요하고, 그에 따라 제작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뮤직비디오도 하나의 영상 작품이다.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하고 혐오감을 주지 않는 총격 장면이라면 뭐라 할 이유가 없지만 예술적 고민 없이 일단 자극을 주고 보자는 식의 총싸움 뮤직비디오는 이제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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