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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센츄리 베스트 - (2) 한신 타이거즈 ; 팀의 역사 <上>

중앙일보

입력

6 - 5 - 6 - 6 - 6.....

갑작스런 숫자 놀이가 아니다. 위의 열거된 수치는 다름 아닌, 우리의 '국보' 선동렬이 현해탄을 건너 센트럴 리그 '주니치 드래곤즈'의 일원이 된 이후 5년간 같은 리그의 어떤 팀이 거둔 '한심스런' 성적이다.

'동렬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고....' 게다가 이상훈까지 가버린 주니치 덕분에 적지 않은 일본 야구팀 및 선수들을 알게 된 우리는, 그들을 통해 많은 일본 프로야구 경기를 접하는 사이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각 팀 및 선수들의 대한 평가치를 머리 속에 차곡 차곡 입력 시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일본 프로야구를 다룬 많은 야구 게임들도 그 영향이 지대하였다).

예를 들면, "요미우리는 전통의 강팀.. 돈도 많아서 선수들도 잘 스카웃해오고, 인기도 많아 FA 선수들이 앞다투어 가고 싶어 하는 팀", "야쿠르트는 컴퓨터 포수 후루타와 최고의 용병 페타지니가 돋보이는 팀.. 90년대 센트럴 리그의 최강 팀'....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럼 위에 숫자로 열거된 팀에 대한 입력치는 과연 어떨까 ?

"음.. 10년 평균 타율이 2할 4푼인 선수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팀. 매년 꼴찌하고, 용병들도 별로고... 야쿠르트를 90년대 최강으로 만들었던 명장 노무라 감독 조차 손쓸수 없는 형편없는 팀. 특히 우리 주니치의 밥"... 이 정도가 아닐까 ?

....'한신 타이거즈 (阪神 タイガ-ス)'.

마치 '한심' 타이거즈처럼 우리에게 인식 되어 버린 팀이지만, 이 팀이 원래부터 이토록 망가 졌었던 팀은 '절대' 아니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은 '제 2의 구단'이란 명칭은 그저 오랜 전통으로만 얻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쿄 제네터스, 나고야 군 등과 함께 프로야구 창설 (1936년) 멤버였던 한신의 첫 명칭은 '오사카 타이거즈'였다.

학생 야구계의 빅 스타 였던 후지무라 후미오 (藤村 富美男, 사진)와 가게우라 마사루 (景浦 將)가 주축 이었던 한신은 `37년 춘계 시즌과 `38년 추계 시즌의 패권을 연거푸 거머쥐며 명문으로써의 입지를 마련하기 시작한다.

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잠시 프로야구의 명맥이 끊길 뻔했던 위기가 도래하기도 했었으나, 그 속에서도 한신은 요미우리와 함께 숯한 스타들을 배출해내며 프로야구 부흥을 위한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한다. 이 시기에 한신이 배출하였던 스타들은 위의 두 선수 외에 와카바야시 다다시 (若林 忠志 / `44, `47 시즌 MVP), 가네다 마사야쓰 (金田 正泰 / `46 시즌 수위타자) 등이 있다.

`44 시즌의 우승에 이어, 전후(戰後) 첫시즌인 `47 시즌까지 거머쥔 한신은 이 시기부터 매스컴, 야구 관계자 및 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라이벌 관계로 다뤄지기 시작한다. 함께 일본 프로야구의 패권를 양분하는 팀으로써 (1리그 15시즌 동안 한신은 4번, 요미우리는 9번 우승), 그리고 도쿄와 오사카라는 지역적 정서까지 겹쳐진 것이 그 이유였다.

일본 프로야구는 1리그 시대의 막을 내리고 마침내 1950년, 양리그 시대로 전환된다. 한신은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 나고야의 인기 구단 주니치 드래곤즈 등과 함께 센트럴 리그에 소속되어 첫 시즌을 맞이 한다.

한신과 요미우리가 우승을 다툴 것이라던 예측은 보기 좋게 뒤집혀 지고, 오히려 1리그 시대의 하위권 팀이었던 쇼치쿠 로빈스 (松竹 ロビンス)가 고쓰루 마코토 (小鶴 誠 / `50 시즌 MVP / 타율 .355, 홈런 51, 타점 161)를 중심으로 한 타선의 안정을 바탕으로 강력한 팀웍을 자랑하며 리그 초대 챔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예상 밖의 상대에 휘둘려 부진한 성적을 보이긴 했으나 (한신 4위, 요미우리 3위) 곧 두 팀이 함께 1리그 시대의 위용을 뽑낼 것이라던 예측은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 예측은 요미우리가 이듬해인 `51 시즌부터 내리 리그를 석권하는데 반해, 한신은 연신 2 ~ 3위권에 머물면서 '또다시' 보기 좋게 어긋나고 만다.

한신은, 아쉽게도 전시 중에 가게우라를 잃긴 하지만 여전히 건재함을 뽑내는 '미스터 타이거즈' 후지무라와 가네다, 그리고 신예 다미야 겐지로 (田宮 謙次郞), 요시다 요시오 (吉田 義男), 고야마 마사아키 (小山 正明), 무라야마 미노루 (村山 實) 등을 앞세워 매년 '거인군'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보다 화려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는 그들 앞에서 번번히 무너지고 말아 많은 오사카 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만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오사카 지역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팀 전력을 착실히 정비해 나간 끝에 `62 시즌, 염원하던 리그 패권을 거머 쥐게 된 것이다. 고야마, 무라야마의 최강 원투 펀치 (52승 기록)를 중심으로한 마운드가 방어율 2.03 (리그 1위)을 기록한 것이 팀 우승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하지만, 3할 타자를 한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마땅한 거포 조차 존재치 않았던 허약한 팀 타선은 (타율 .223, 5위) 결국 일본 시리즈에서 퍼시픽의 패자 '도에이 플라이어스 (東映 フライヤ-ズ)'에 패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만다.

1, 2차전을 연거푸 승리하고 3차전에선 무승부를 기록했던 한신은 시리즈 제패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였으나, 오자키 유키오 (尾崎 行雄)와 도바시 마사유키 (土橋 正幸, 시리즈 MVP)의 역투에 고비 때마다 번번히 타선이 무릎을 꿇고, 막강 투수진 역시 하리모토 이사오 (張本 勳), 부스지마 쇼이치 (毒島 章一), 다네모 마사유키 (種茂 雅之, 시리즈 공동 MVP) 등이 이끄는 타선을 막아 내지 못하며 안타깝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게다가 상대의 감독이 2년 전까지 라이벌 요미우리의 사령탑이었던 미즈하라 시게루 (水原 茂)였으니, 이쯤되면 한신과 요미우리의 악연이 또다시 묘하게 맺어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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