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급 인재가 왜 셔틀버스 운전사 됐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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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28면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좋아지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을 가장 피부로 느끼게 되는 계기는 매년 국내에서 열리는 학회 연사들의 면면을 볼 때다. 예전엔 국내에서 만날 엄두도 못 냈던 세계적으로 저명한 각 분야 최고 학자들이 많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송기원의 생명과 과학 녹색 형광 단백질 뒷얘기

지난주 서울에서 열렸던 한국생화학분자생물학회에도 노벨상 수상자 2명을 포함해 많은 석학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꼭 강연을 듣고 싶었던 학자는 200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마틴 챌피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였다. 그는 선충을 모델 생물체로 해 발생 과정에서 어떻게 다양한 신경세포가 만들어지고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연구하는 발생유전학자다.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만들고, 노벨상을 받게 해준 것은 238개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녹색 형광단백질이라는 26kD(킬로달톤)의 크지 않은 자체 발광 단백질이다.

혹시 독자 중에 녹색 형광이 번쩍이는 살아 있는 토끼나 쥐, 혹은 물고기 사진을 본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들은 유전체에 보통 GFP(Green Fluorescence Protein)라고 불리는 녹색 형광 단백질 유전자를 삽입한 유전자 변형 생물체다. 이들 동물의 모든 세포에서는 자체 발광 녹색 형광 단백질이 발현된다.

녹색 형광 단백질은 원래 ‘Aequorea victoria’라는 해파리(사진)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가시광선 영역의 푸른빛과 자외선(UV) 파장 영역의 빛을 흡수해 가시광선 영역의 초록색 빛을 내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2008년 챌피 교수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던 일본의 시모무라 오사무 박사다.

시모무라 박사는 특히 빛 없는 바다 깊이 사는 생물이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생화학적 현상을 해파리로 연구하다가 녹색 형광 단백질을 발견하게 됐다. 녹색 형광 단백질은 다른 요소들이 필요 없이 그 자체로 빛을 내는 특성을 갖는데 그 이유는 단백질 구조 때문이다. 빛을 내는 부분이, 내부가 보호돼 있는 전구처럼 베타베럴이라는 단백질 구조의 통 속에 빛을 내는 발광체 부분과 이 발광체를 활성화하는 부분이 숨겨져 있는데 세포의 주성분인 물에 의해 발광이 꺼지지 않도록 돼 있다.

이 발광 원리를 포함한 녹색 형광 단백질의 구조는 2008년 노벨상 공동 수상자였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샌디에이고)의 로저 첸 박사에 의해 밝혀졌다. 그는 또 후에 유전자 변이를 이용해 이 단백질 구조를 조금씩 변형시켜 녹색뿐 아니라 파랑·빨강 등 여덟 가지로 변형된 형광 단백질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내가 만나고 싶어한 챌피 교수의 공적은 이 녹색 형광 단백질을 다른 생물체에 인위적으로 발현시키고, 특정 단백질 유전자에 이 유전자를 접합시켜 원하는 단백질을 살아 있는 세포에서 계속 추적할 수 있도록 꼬리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는 선충에 녹색 형광 단백질을 처음으로 신경계 발생을 연구하던 선충에 적용해 신경세포 발생 과정을 추적했다. 그런데 늘 그렇듯 성공 스토리가 있으면 또 불운의 주인공이 있는 법. 녹색 형광 단백질 스토리에서 불운의 주인공은 매사추세츠주 우즈홀 해양연구소 연구원이었던 더글러스 프라숴 박사다. 그는 1992년 해파리에서 녹색 형광 단백질의 유전자를 처음으로 분리하고 이 유전자를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챌피 교수와 첸 교수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그 후 녹색 형광 단백질 연구비가 끊겨 계속할 수 없었고, 다른 연구소로 옮기고 연구 주제를 바꾸었다가 이마저 실패하고 과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2008년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 3인은 모두 ‘프라숴 박사가 없었으면 녹색 형광 단백질 연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그의 공로를 치하했으나 그는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됐다. 또한 이 수상 발표가 나던 때 프라숴 박사는 생계를 위해 시간당 8.5달러를 받으며 앨라배마주 헌츠빌의 도요타자동차 공장에서 셔틀버스 운전사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생명체 연구의 필수 불가결한 도구가 된 녹색 형광 단백질 발견 스토리는 우리에게 과학 연구에 대한 몇 가지 진실을 시사한다. 먼저 녹색 형광 단백질의 발견은 해파리 발광 연구 같은 한 분야의 매우 기초적인 자연과학적 연구가 어떻게 다른 분야에 매우 유용하게 응용될 수 있는지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성공적인 연구는 우수한 한 과학자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 과학자들의 상호 협력에 의해서만 가능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떠나 축적된 기초과학 지식들이 분야 간의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불운했던 프라숴 박사의 예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도 시의적절하게 기초 연구비가 지원되지 않는다면 그 재능이 사회적으로 낭비될 수밖에 없다. 이런 과학의 특성을 생각하면 마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키우듯 몇몇 검증된 분야와 과학자에게만 집중 투자하는 우리 과학정책에 마음이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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