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법 권력 갈등, 국민 입장에서 풀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최종심의 권한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중 어느 쪽에 있을까.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법 적용이 잘못됐다”며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결정을 함으로써 이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제 헌재는 GS칼텍스가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인세 소송에서 패소 판결이 확정된 뒤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했다. GS칼텍스는 “근거 조항인 옛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가 1993년 법 전면 개정으로 효력을 잃었는데도 세금 700억원을 내라고 판결한 것은 기본권 침해”라고 헌법소원을 냈었다. 이에 헌재가 재판관 전원일치로 “대법원이 입법상의 흠결(欠缺)을 보완하기 위해 ‘특별한 사정’을 근거로 부칙이 실효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헌법상 권력분립·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과 헌재가 한 사안에 대해 정반대 입장을 제시함에 따라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양대 사법 권력의 충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헌재는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68조1항에 대해 한정(조건부) 위헌 결정을 한 바 있다.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률을 적용함으로써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은 헌법소원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이후 한정 위헌 결정이 이어지자 대법원은 “법원에 속한 법률 해석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해 왔다. 이번 사건의 경우 GS칼텍스가 헌재 결정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해도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시 사건이 헌재로 오면 해당 재심 판결을 취소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두 기관의 갈등은 그간 주요 법률 위헌 결정과 대통령 탄핵심판 등이 이어지면서 헌재의 영향력이 확대돼 온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일부 의원이 한정 위헌 등의 법적 근거로 마련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제출하자 대법원은 “법원이 헌재의 통제 밑에 놓이게 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대법원과 헌재가 재판 권한을 놓고 앙앙불락하는 것은 헌법기관이라는 위상에 맞지 않다. 서로 다른 방향의 판결과 결정 사이에서 사건 당사자가 핑퐁처럼 오가게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리는 두 기관의 갈등을 철저히 국민의 입장에서 풀어야 한다고 본다. 양측이 ‘더 높은 재판 기관이 어디냐’만 다툰다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국민 기본권을 보다 두텁게 보장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잣대로 삼아 보완입법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법원이 잘못된 재판 절차로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위헌인 법률을 적용할 때는 예외적으로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 판결 후 다시 사건을 헌재로 갖고 가면 사실상 4심제로 국력 낭비가 심해질 것”이란 대법원 지적에도 일리가 있는 만큼 그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또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정한 헌법의 정신이 지켜질 수 있도록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대법원과 헌재는 ‘사법 엘리트들의 파워게임’이란 따가운 시선을 잊어선 안 된다. 두 기관이 국민을 위한 상생의 길을 모색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