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여작가, 식당·호텔·마트 직원 전전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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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부키
311쪽, 1만4800원

이 책은 미국판 위장취업 보고서다. 단 노동현장에 들어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꾸미려는 허튼 음모 따위가 아니다.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워킹 푸어(근로빈곤층)가 과연 어떻게 먹고 살까” “왜 일할수록 더 가난해질까”를 확인하자는 뜻에서였다. 실은 저자부터 연구대상이다.

 생물학 박사인 그는 도시 빈민 NGO 활동가로 살다가 르포 작가로 나선 케이스. 정확하게 이 책은 잠입취재 논픽션인데, 여자 나이 50세가 다 된 시점에 뛰어들었다. 놀랍게도 ‘바닥생활’이 3년이나 지속됐다.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에서 월마트 매장 직원에 이르는 6개 업종을 전전했다.

 독종 저자에게 직업 따로, 중산층 삶 따로 노는 위선 따위란 끼어들 수 없다. 이를테면 음식의 경우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로 해결했는데, 하루 세 끼 밥값이 9달러를 넘지 않았다. (우리 돈 1만원 내외) 그런 삶의 디테일이 이 책의 호소력인데, 결론이 쇼킹하다. 일단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허드렛일이라고 쉬운 일은 결코 없었다. (261쪽) 저자는 헬스로 단련된 몸인데도 현장 일은 항상 버거웠다. 둘째 가난하기 때문에 더욱 돈이 든다는 게 거대한 역설이다. 아파트를 구할 때 한 달치 집세(보증금)가 없으니 일주일 단위로 방세를 내야 했다. 조리기구가 없는 집에서 살아야 할 경우 패스트푸드나 냉동식품을 내내 먹어야 하고 끝내 비만의 늪에 빠진다.

 또 보험에 들 형편이 못 되니, 건강을 잃고 일자리마저 잃는다. 이런 악순환이 너무도 리얼하지만, 세 번째 메시지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중산충의 안락한 일상이란 결국 워킹 푸어의 희생 위에서 가능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워킹 푸어, 현재 미국에는 7.2%인 1050만 명이 있다. 우리는 더욱 심각해 노동인구의 11.6%(27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꾼 책’이다. 11년 전 출간된 이후 150만 부 이상 팔렸다. 미 연방정부가 2007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로 올린 것에도 이 책의 영향을 무시 못한다.

 이 책은 꼭 10년 전 『빈곤의 경제』이란 이름으로 번역본이 나왔다. 즉 『노동의 배신』은 재번역본인데, 지난해 추가된 저자의 후기(後記)를 붙이는 성의를 보였다. 덕분에 좀 옛날 정보라는 이미지가 없다. 후기 내용이 또한 쇼킹하다. “2008년 시작된 미국의 경기 하락 이후 워킹 푸어의 삶은 더 더욱 나빠졌다.” 기록의 힘을 보여주는 논픽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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