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최종 예선 안방서 못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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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를 TV로 시청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해 당사자 간 힘 싸움 때문에 시청자들의 보편적 시청권이 침해당했다. 지상파 3사(KBS·MBC·SBS) 스포츠국장단은 7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오는 9일에 열릴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카타르 원정경기 중계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중계권료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어났다. 월드컵 최종 예선을 주관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중계권을 위임받은 월드스포츠그룹(WSG)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했다. 패키지 계약을 하기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12일 한국에서 열리는 레바논과의 2차전을 비롯해 앞으로 열릴 최종 예선 경기도 지상파로 시청하지 못한다. 정 중계를 보고 싶다면 ‘아프리카티비’와 같은 인터넷 개인방송을 이용하거나 외국 채널을 수신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아시아 최종 예선 진출국 가운데 한국과 이란만 중계권 협상에 실패했다.

 홍콩의 스포츠마케팅 업체인 WSG는 4년간 최대 20경기(월드컵 최종 예선, 아시안컵, 런던 올림픽)를 중계하는 조건으로 5200만 달러(약 609억원)를 제시했다. 경기당 3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반면 지상파 3사는 1700만 달러(약 205억원)를 제시했다. 세금을 포함하면 2040만 달러가 된다. 세금을 포함해도 WSG와는 3000만 달러나 액수 차이가 났다.

 이후 협상을 거듭하면서 WSG는 중계권료를 4600만 달러(약 539억원)로 낮췄다. 대신 인터넷, IPTV 등 뉴미디어 중계를 제외하고 지상파 중계만을 허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지상파 3사는 같은 조건으로 1510만 달러(약 177억원)를 최종 제시했다. 이후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3사 대표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 KBS 박영문 스포츠국장은 “초유의 사태를 빚게 돼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면서도 “WSG의 금액 산정이 터무니없다”고 했다. “WSG가 이전 계약에 비해 중계권료를 60% 올렸다. 그런데 가격 인상의 논리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전 계약에서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총 5개 대회(월드컵 최종 예선, 아시안컵 2개 대회, 올림픽 최종 예선 2개 대회) 32경기를 중계하는 조건으로 WSG가 내건 가격이 2150만 달러였다. 당시 IB스포츠가 중계권을 사 지상파 3사에 되판 가격은 3700만 달러다. WSG가 인상의 기준으로 삼은 가격이 바로 3700만 달러다. 박 국장은 “마진이 붙은 가격을 기준으로 인상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난다 ”며 “그들 요구대로 중계권료를 주게 되면 엄청난 국부 유출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허연회 MBC 스포츠국장은 “한국이 국제시장에서 봉이 됐다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 이번 기회에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사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동안 3사 간 출혈 경쟁이 중계권료 인상을 가져온 요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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