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비디오〉떨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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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랑의 기억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의 기억이란 항상 자신에게 소중하기 마련이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낼 때면 자신이 경험하고 느꼈던 것보다 항상 미화시켜 전달하게 된다.

특히 자신이 처음 동정을 쏟아 부었던 여인이 홍등가에서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주는 어떤 여인이었다고 해도 스스로에겐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고, 욕정에 못 이겨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번 쏘아 본 물총이라 하더라도 그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적인 사랑의 고백을 하기에 영화라는 매체는 그리 좋은 도구가 되지 못한다. 영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이루어내는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영화로 옮기기도 힘들뿐 아니라 영화로 만들어 놓았다하더라도 연출자의 주변 관계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그 이야기를 이해하고 함께 재미있게 보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술은 마스터베이션과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진부하고 사적인 얘기라 할지라도 그것을 훌륭한 이야기꾼이 풀어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똑같은 얘기라도 입심이 좋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없는 이야기까지 섞어 만들어낸 영화라면 아무리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친 영화라도 끝까지 재미있게 보게 된다. 이번 소개할 〈떨림〉역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주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물론 이 영화가 감독의 개인적인 얘기를 다루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러티브 상의 특별한 영화적 장치 없이 소설가인 주인공이 자신의 첫 경험과 그 이후 경험한 여자들을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면서, 진부하고 사적인 얘기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을 세밀한 묘사와 리얼리티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높였다는 점이 이야기꾼으로서 자질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럼 흥분되고 숨막히게 조마조마하면서도 아찔했던 첫 경험의 〈떨림〉으로 들어가 본다.
영화 〈시네마 천국〉이 헐리우드 키드의 성장 영화라고 한다면 〈떨림〉은 오팔팔 키드의 성장 AV이다.

이제는 소설가가 된 주인공, 도시의 황량함과 외로움 때문에 몸을 섞는 육체적 관계를 뒤로하고 글을 쓰기 위해 시골로 향한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던 주인공은 가식 없는 순수한 사랑 얘기를 쓰기로 하고 자신의 첫 경험이었던 재수 시절을 상기한다.

자신의 첫 연애 상대는 화려한 러브스토리 속의 주인공도 아니고, 첫 경험 또한 분위기 좋고 근사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야릇하게 꾸며진 빨간 조명등 아래 홀딱 벗겨진 채 대야에 물을 담아와 사타구니를 씻겨주던 여인은 내가 상상했던 나의 첫 여인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특히 20년 가까이 지켜온 나의 동정은 제대로 자세도 잡아보지 못한 채, 염치도 없이 그녀의 입 속에서 분출되었고, 입 속에 있던 나의 동정을 휴지에 아무렇게나 뱉어내고 애 다루듯 끝마무리를 해주던 그 여인을 보면서 여자에 대한 환상은 휴지통 속에 쳐 박힌 나의 동정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봤을 만한 이야기지만 리얼리티를 살려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육점과 어딘가 다른 분위기 조명, 조악하게 바느질 된 하트 모양 무늬가 새겨진 이불, 분홍색 플라스틱 물대야가 방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해주고, 짧은 핫팬츠에 찐한 화장, 거친 입과 그 속에서 잘게 씹히고 있는 껌, 거기에 리얼한 몸 동작을 연기해 주는 여배우가 현장감을 살린다.

사창가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첫사랑의 환상에 대한 배신과 섹스의 허무함을 느끼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후 주인공은 친구의 소개로 소세지라는 별명을 가진 미친 여자를 만나 소세지를 사주고 섹스를 하게 된다. 섹스의 환상을 포기한 채 욕망의 분출지로 여자를 선택한 주인공은 가학적인 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해댄다.

변태나 성도착자로서의 설정이 아닌 주인공이, 직접 가학적인 성행위를 행하면서 비정상적으로 얻은 첫 경험의 뒤틀린 욕망을 보상받으려는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행위가 자신에게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소세지를 받기 위해 몸을 주는 미친 여자를 자신이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끔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글을 쓰면서 점점 순수한 관계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주인공은 글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 육체적 관계만을 행하던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결말을 맺는다. 영화의 구성이 잘 짜여있다거나 재치있고 독특한 발상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적인 묘사가 독특한 발상만큼이나 아기자기한 재미를 준다.

사타구니의 앞쪽을 닦은 뒤 다음 장면으로 대충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돌려 뒤에까지 꼼꼼히 닦아주는 사려 깊은 배려는 물론 이후 다시 찾아가는 사창가에서 서비스 개선이 되었다며 물수건을 입으로 찢어 닦아주는 디테일까지 세심한 표현이 눈길을 끈다.

사춘기 시절의 성장 영화 〈스텐바이 미〉, 미국 대공황 시절의 성장 영화 〈원스어폰어타임 인 어메리카〉, 그리고 헐리우드 키드의 〈시네마 천국〉만큼이나 리얼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오팔팔 키드의 〈떨림〉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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