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 가전 무덤’ 한국서 연 22%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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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대표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 가까이를 책임지는 일렉트로룩스는 월풀에 이은 세계 2위 가전회사다. 하지만 삼성과 LG의 텃밭이라 외국산 가전제품의 무덤이라 불리는 한국에선 그런 저력을 발휘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였을까. 2010년 일렉트로룩스는 당시 35세 미혼 여성이던 마케팅팀장을 일렉트로룩스코리아의 사장으로 선임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했다. 지난 2년간 연평균 22%의 성장을 일군 정현주(37)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리더십의 핵심이 뭘까요? 의사소통? 보상? 저는 비즈니스 성과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소통이 잘 되고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도 성과가 없으면 조직의 활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정 대표가 지난 2년간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한 이유다. ‘잘 되는 집안은 뭘 해도 잘 된다’는 말이 있다. 정 대표는 “집안 사람들의 자신감과 분위기 때문”이라며 “리더가 성과를 만들어야 구성원들이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정 대표는 인력 확충에 힘을 쏟았다. 2010년 31명이던 직원을 47명까지 늘렸다. 특히 영업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아무리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지만 서른 명이 연 200억원가량을 버는 작은 현지법인에 오려는 인재는 많지 않았다. 정 대표는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들어 설득했다. 그는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 얘기를 꺼냈다. 재무부 장관 비서실장 출신이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이라는 신생 회사에 합류해 회사를 이끄는 중역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작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가 크는 만큼 자신도 클 수 있다”고 정 대표는 직원들을 설득했다. 그는 “용의 꼬리가 되기보다 뱀의 머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가운데는 그 뱀을 용으로 키우는 사람도 있다”며 “그런 사람이 우리가 원하는 인재”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꼽은 또 다른 성장의 동력은 ‘업무의 체계화’다. 작은 조직일수록 업무가 체계적이지 않아 개인의 역량에 따라 성과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누가 업무를 맡든 안정적으로 성과를 내도록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대표가 된 직후에는 ‘마라톤 회의’로 악명이 높았다. 어떨 땐 7시간 넘게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달 10억원어치를 팔겠다’가 아니라 목표 매출이 10억원이 나온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게 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9억원어치를 팔더라도 근접하게 예측하고 계획해 얻은 결과라면 어쩌다 보니 10억원 매출을 올린 것보다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방 광역시의 구매력 있는 고객들을 집중 공략하자고 방향을 잡았다. 이런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 그는 “지금은 아무리 길어도 회의는 1시간을 넘지 않는다”며 웃었다.

 정 대표는 1999년 대학을 졸업할 때 외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IMF 세대’다. 마케팅 업무를 해보고 싶었지만 비용 줄이기에 힘을 쏟던 기업들은 이 분야 인력을 채용하지 않았다. 운 좋게 은행에 들어갔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박차고 나왔다. 그 뒤 홍보대행사를 거쳐 2002년 일렉트로룩스코리아 설립 멤버로 합류했다. 그는 “다 차려진 밥상은 없다”며 “즐겁게 밥상을 차린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장 선임 당시 미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정 대표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기회가 닿지 않았을 뿐 독신으로 살 생각은 없다”며 “후배들에게도 일을 위해 개인적 삶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혼하면서 여성이 지게 되는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사회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에게 야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일렉트로룩스코리아 대표 제품

①울트라원(진공청소기) 77만5000원
②에르고라피도 플러스(무선 청소기) 36만8000원
③프리스카 에어워셔(공기청정기) 55만원

자료 : 일렉트로룩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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