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쟁

참여재판, 미국식 배심제로 가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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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대법원은 6월 중 국민사법참여위원회를 출범시켜 국민참여재판제도의 개편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형사재판 피고인의 신청과 재판부 판단에 따라 참여재판 실시 여부를 결정하고 배심원 평결에 권고적 효력만 인정하도록 한 현행 제도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된다. 법조계에서는 미국식 배심제로 바꾸자는 의견과 점진적인 정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두 갈래 의견을 들어봤다.

미국처럼 배심원 평결에 따라 판결해야

우리나라 형사사법제도가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가장 큰 특징은 주권자인 국민의 참여가 철저히 배제돼 있다는 점이었다. 입법권이나 행정권이 대의민주제에서 나아가 참여민주제로 발전하고 있음에 비해 유독 사법권만은 오랫동안 국민주권의 이념이 배제된 채 법조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미법계의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만장일치제로 유·무죄를 결정한다. 바로 배심제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직업 법관과 시민들이 함께 유·무죄를 결정하고 형량도 정하는 참심제로 재판을 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성립과 더불어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가 세계의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 잡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배제형 형사사법을 극복하는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이 국민참여재판의 도입이었다. 사법개혁의 성과로 2008년 1월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당초 약 5년간 시범실시한 후 우리나라의 사법환경에 적합한 최종적인 형태를 결정하기로 했다. 시범실시인 만큼 연간 100~200건 정도를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피고인이 신청한 경우에만 실시하되 신청한 경우라도 재판부가 배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에 권고적 효력만을 부여함으로써 재판부가 상반된 판결을 내릴 수도 있도록 했다. 시범실시라는 명목으로만 가능한 과도기적 입법이라 할 것이다.

 올해로 시범실시 5년차에 들어섰다. 이제 최종 형태를 결정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당면 현안으로 다가왔다. 본격 실시에 걸맞은 제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도기적 입법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명목상의 제도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배심원의 평결에 원칙적으로 구속력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만장일치제나 적어도 절대다수제의 평결 방식을 채택한다면 유·무죄 판단에 오류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해소될 수 있다. 다양한 사회 경험과 상식으로 집합된 의사결정체의 사실 판단이 그 정확성에 있어 소수 직업 법관만의 판결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이는 이미 서구의 실증적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항이기도 하다.

 구속력 부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 조항에 위배될 수 있음을 근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헌법의 상위가치인 국민주권의 이념에 비추어 법관의 주재·관여 하에 진행되는 재판 절차의 보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형사사법의 선진화나 사법의 신뢰 제고라는 제도 목적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소극적으로만 문언 의미를 해석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피고인의 신청에 따라 실시 여부를 정하는 것은 형사재판의 형태를 개인이 결정하는 것으로 전례가 없는 독특한 방식이다. 현재의 극히 낮은 실시율은 신청 방식과 더불어 배제 결정 사유를 폭넓게 인정한 것에 원인이 있다. 일국의 재판제도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의 수정이 요구된다.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국민 신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수사기관의 조서에 의존하는 재판이 아니라 법정에 제시된 증언과 물증으로 판단하는 ‘재판다운 재판’을 실현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또한 무전유죄 유전무죄, 법조유착, 전관예우 등 국민 의식 속에 남아 있는 사법 불신을 치유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시민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재판에서는 이들이 뿌리내릴 터전이 없기 때문이다.

이동희 경찰대 교수 법학과

문화적 배경 다르고 위헌 소지 있다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는 우리 실정에 맞는 국민의 사법참여제도를 마련하기로 하고 일단 현행 국민참여재판제도를 고안해 5년간 시범실시하기로 했다.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올해로 도입 5년째를 맞이하자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참에 아예 미국식 배심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무작정 미국식 배심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는 면이 있다.

  미국식 배심재판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막대한 돈이 드는’ 고비용·저효율이라는 점은 이미 미국에서도 상식에 속한다. 배심재판을 담당하는 미국 판사 1인이 처리하는 사건 수는 월평균 1.5건에 불과하고 기껏해야 연 18건이라고 한다.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 소송 결과가 좌우되고 결국 경제적 약자에게 대단히 불리하다는 것이다. 복잡한 사건이나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건에서 일반 시민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 배심재판의 무죄 비율은 무려 25%에 이르며 1995년 심슨(O. J. Simpson) 살인사건에 대한 무죄 평결은 지금도 많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가 미국식 배심제도로 전환한다면 플리바기닝(유죄협상) 제도의 도입처럼 다른 제도까지 함께 미국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대륙법계 사법제도를 채택한 우리에게 사법구조 자체의 근본적인 변경을 뜻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식 배심제의 도입에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로서 이미 배심제도를 도입했다가 폐지한 프랑스, 독일, 일본의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프랑스는 25%라는 천문학적 무죄율을 견디지 못해 1941년 배심제를 전격 폐지했고, 독일도 1924년 배심제를 폐지하고 참심제로 전환했으며, 일본 역시 1928년 시행한 배심제를 1943년 사실상 폐지한 후 최근 참심제를 기본으로 한 재판원제도를 도입했다. 근래 배심제를 도입한 러시아도 무죄율이 약 20%에 달하자 폐지론이 대두되고 있다. 배심제와 참심제 중 어떤 제도가 우리의 현실에 더 부합하는 것인지는 사법개혁위원회의 논의 당시에도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한 문제였다. 어떤 제도이든 나라마다 고유한 역사·문화·국민적 정서가 다르기 마련이고, 순수한 배심제 또는 참심제 도입은 우리 헌법에 위반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사건은 2008년 64건, 2009년 95건, 2010년 162건, 2011년 250여 건으로 해마다 늘고는 있으나 연간 약 2만 건에 달하는 형사합의사건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국민참여재판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전개되고 있지만 성과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무죄율은 8.4%로 같은 사건의 일반재판 무죄율 0.9%보다 8배나 높았다. 90% 이상 사건에서 직업 법관의 판결과 배심원의 권고가 일치했다고는 하지만, 피고인이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10%의 오차에 명운이 걸려 있다.

배심원의 결론은 모두 틀리고 직업 법관의 결론은 모두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의 선후를 따진다면 좀 더 시간을 갖고 우선은 현행 참여재판을 활성화해 한국형 모델 만들기에 충분한 경험을 축적하는 일이 급선무다. 자전거 몇 대 만들어 보았다고 갑자기 종목이 다른 비행기나 선박을 만들자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주원 고려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