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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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경제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합니다. 경제성장률은 낮아지고 물가가 크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습니다. 1970년대를 경험한 어른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흔들어요. 그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죠.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야단일까요.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을 합친 말로 두가지 악재(惡材)가 동시에 닥치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아지면 사람들은 호주머니가 두둑해져 소비를 늘리게 되므로 물가가 오릅니다. 반대로 경기가 나빠지면 지출을 줄여 물가가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물가가 오르면(인플레이션)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든가, 이자율을 높여 물가를 잡는 게 보통입니다. 시중에 돈이 줄어들고 이자율이 오르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사람들도 소비보다는 저축을 늘려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그러나 경기가 침체하고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면 이런 처방이 효과가 없어요.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도 실업은 줄어들겠지만 물가는 더욱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정책을 실시하면 물가는 잠잠해지지만 경기는 더욱 얼어붙고 실업자도 늘어나게 됩니다. 결국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되고 국민들은 인플레이션과 실업 증가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은 한마디로 난치병(難治病)”이라며 “당뇨병과 간장병의 합병증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여서 처방을 내리기 힘들다”고 하지요.

그럼 스태그플레이션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표적으로 국제 원유 가격 등 수입 물가가 크게 오를 때 일어납니다. 수입 물가가 오르면 기업들은 이익이 줄어들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제품 값을 높이게 됩니다. 그러나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자들은 수요를 줄이게 돼 결국 경기침체와 실업증가로 연결되죠.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은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치솟으면서 일어난 1973년의 세계적인 불황입니다. 당시 유가는 73년 10월부터 불과 넉달 사이 4배가 올랐습니다.

유가가 치솟자 각종 제품 값도 덩달아 올랐고 채산성이 악화된 기업들의 도산이 줄을 이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물가까지 올라 더욱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석유파동 직후인 74년 물가는 15%나 올랐고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예전에는 연평균 4%)로 뚝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땅값과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 부동산 투기와 생필품 사재기 소동까지 벌어졌어요.

경기 과열현상 때문에 사람들이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믿는 경우에도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수 있답니다. 물가가 상승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계속 올리고, 노동자들도 물가가 상승하는 만큼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되겠죠.

경기가 마냥 좋을 수는 없어 어느 순간 내리막길로 돌아서는데 물가 오름세 심리는 일정기간 그대로 남게 마련입니다. 이 경우 물가가 오르면서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73년의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유가 폭등과 함께 물가상승 심리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미니 붐’이라고 불릴만큼 그 이전의 경기 호황 때 사람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앞으로도 물가가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가 폭넓게 퍼져있었죠.

90년대초 우리나라가 또 한차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던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낮은 유가·낮은 금리·낮게 평가된 원화 가치라는 이른바 ‘3저 호황’이 끝났음에도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기업은 부동산 투기에 매달리고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바람에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유가 등 수입물가가 오르는 것은 단기간 고생으로 그치지만 인플레 기대 심리로 임금과 땅값 등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높아질 경우 고통이 오래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요.

특히 우리나라는 물가가 오르면 부동산 투자가 최고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성이 높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는 것은 스태그플레이션에는 만병통치약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고통을 나누고 참고 견디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스태그플레이션도 보약(補藥)이 될 수 있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79년 2차 석유 파동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을 이겨낸 미국과 영국이예요. 당시의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는 정부 지출을 줄이고 시장의 돈줄을 죄는 강력한 긴축정책을 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어나더라도 일단 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물론 두나라는 기업 파산과 실업이 예전보다 두배로 늘어나는 끔찍한 고통을 치뤘답니다. 그러나 대처 총리는 유명 경제학자 3백여명이 보낸 “예산 삭감이 사회적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편지를 받고도 예산을 더 깎았어요. 그러면서 대처 총리는 “지금의 고통을 이겨내야 우리 경제에 미래가 있다”고 국민들을 설득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이와 함께 세금을 깎는 방법으로 기업들의 생산과 투자를 부추기는 방법을 썼습니다.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세금을 적게 내는 만큼 소비를 늘였답니다.

이 때문에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총리는 부자와 빈곤층의 소득 격차를 더 벌였다는 비난도 받고 있어요.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는 동안 경제의 체질을 강화시켜 오늘날 몰라보게 건강한 경제를 갖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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