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박지은 우승의 의미와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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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오디스디포에서 생애두번째 우승을 일궈낸 박지은(22)은 그동안 미뤘던 '그레이스 돌풍'에 시동을 걸었다.

이번 우승으로 박지은은 무엇보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심감을 되찾은 것이 가장 큰 수확.

'박세리는 물론 카리 웹을 능가하는 실력에 미모까지 갖춰 LPGA 최고의 상품성을 지닌 선수'라는 엄청난 찬사를 받고 프로에 뛰어든 뒤 기대만큼 성적을 올리지 못한 데 따른 실망감이 짙어질 무렵 터진 우승이기 때문이다.

미국 주니어 및 아마추어에서 무려 55승을 따내고 프로무대에 뛰어든 99년에도 2부투어인 퓨처스투어 하반기에 10개 대회만 출전해 5승을 올리며 상금왕을 차지,퀄리파잉스쿨을 면제받았던 박지은이지만 LPGA 투어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지난해 1월 LPGA 개막전 네이플스메모리얼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렀지만 턱걸이 컷오프 통과에 이어 79명 가운데 공동 76위에 그치는 혹독한 신고식을 거쳤다.

6월 캐시아일랜드닷컴클래식에서 첫 승을 신고하고 톱10에 4차례나 들었지만 '높은 기대치' 탓인지 '과대포장됐다'는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아쉬운 것은 갈비뼈 부상에 따른 시즌 도중하차로 거의 손에 쥐었던 신인 왕 타이틀을 도로시 델라신에게 빼앗긴 일.

박세리(98년)-김미현(99년)에 이어 LPGA 신인왕을 한국선수가 내리 3년을 독식할 수 있었던 찬스를 놓쳤기에 아쉬움은 더 컸었다.

'1천만달러'까지 치솟았던 몸값이 풍선에 바람빠지듯 하락했고 '박지은은 아직 멀었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왔다.

그러나 박지은은 '서두르지 않는다'며 서두르지 않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했고자신의 장기인 폭발적인 장타력은 그대로 지닌 채 정교해진 쇼트게임과 향상된 퍼팅솜씨로 자신의 시대 개막을 선언했다.

박지은의 최대 장점은 장타력과 함께 숨막히는 승부에서도 좀체 흔들리지 않고 과감한 플레이를 펼치는 배짱이라면 샷의 정확도와 퍼팅 불안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 때문에 버디 사냥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이지만 보기가 많아 상위권 도약에 걸림돌이 되어 왔다.

이번 대회에서도 박지은은 드라이브샷이 자주 페어웨이를 벗어나고 그린을 자주 놓쳤지만 쇼트게임이 한결 정확해졌고 2m 안팎의 퍼팅을 대부분 성공시키는 집중력을 발휘한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장타력과 특유의 두둑한 배짱이 쇼트게임과 퍼팅 실력의 향상으로 날개를 단 셈이다.

힘으로 밀어붙이던 경기 운영이 코스 특성에 따라 '돌아가는 지혜'를 선택하는 등 세련되어 진 것도 박지은이 올해 달라진 점.

하지만 박지은이 박세리에 이어 LPGA에서 한국 돌풍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다소거친 플레이를 좀 더 매끄럽게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드라이브샷과 아이언샷의 정확도 향상은 박지은이 반드시 이뤄야할 필생의 과제.

이와 함께 잦은 보기로 경기의 흐름을 스스로 끊는 기복심한 플레이 습관도 고쳐야 할 점으로 꼽힌다. 다행히 이번 대회에서 박지은은 마지막날 1타차 리드의 압박감 속에서 거푸 맞
은 위기를 1차례만 빼고 모두 파로 막아내 모처럼 꾸준한 플레이를 보였다.

박지은이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는 '구조조정'에 성공한다면 5승 이상은 무난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는만큼 '1천만달러'를 호가하던 몸값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서울=연합뉴스) 권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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