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박원순에 토목을 허 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윤창희
사회1부 기자

광화문 광장을 보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생각이 많다. 광장 양쪽으로 차가 쌩쌩 달려 고립된 섬 같다.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이런 혹평을 받는 광장을 어떻게 바꿔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꺼낸 안이 2008년 광장 조성 당시 검토했던 ‘편측(片側) 배치안’이다. 양방향 차도는 교보빌딩 쪽으로 몰고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옮기는 것이다. 한쪽으로는 차도와 접하지 않는 제대로 된 광장을 만들고, 그 위에서 담소를 나누는 시민들의 모습을 그는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구상은 교통 혼잡을 우려하는 실무진의 반대에 부닥쳤다. 광장 조성에 민감한 청와대의 반대도 예상된다. 박 시장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대규모 토목사업에 대한 부담이다. 전직 시장들의 토목사업을 부정하고 당선된 마당에 개장한 지 2년도 안 된 광화문 광장을 뜯어낼 결심을 하기란 쉽지 않다. 오세훈 전 시장이 발표한 광화문 빗물터널도 그는 하지 않겠다며 정부로부터 받은 예산(118억원)까지 반납한 터다.

 박 시장의 지난 7개월은 파격과 화제의 연속이었다. 온라인 취임식으로 시작해 반값 등록금과 정규직 전환 같은 색깔 있는 정책들을 쏟아냈다. 돌고래 제돌이를 풀어주기로 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동을 이슈화하는 ‘반짝 반짝’ 이벤트들을 연출하며 찬사와 논란을 함께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는 과연 무엇을 남긴 시장으로 기록될까. 시민운동가가 아닌 지방정부 수장이 주요 토목사업에 대해 부정으로만 일관할 경우 시민들의 삶을 과연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그의 임기는 이제 고작 2년 남았다.

 나는 그 해답이 과거의 부정이 아닌 긍정에 있다고 본다. 과거 시장들의 손때가 좀 묻었지만 지지부진했던 사업을 성공시켜 박 시장의 업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오세훈 전 시장이 시작한 서해뱃길 사업을 박원순 식으로 멋지게 마무리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내륙운하인 경인 아라뱃길(인천항~김포)이 완공되면서 이를 여의도까지 연결하는 서해뱃길 사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근데 박 시장은 29일 한강 탐방을 하며 이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해뱃길 사업이 여러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갔다. 배 통행을 위해 교각 간격을 늘리는 500억원짜리 양화대교 공사는 막바지다. 유람선 아라호 건조에 112억원이 들었다. 서해뱃길을 바다로 연결해주는 아라뱃길은 2조2500억원짜리 공사였다. 이제 1800억원만 더 투입해 선착장을 만들고 한강 일부 구간만 준설하면 4000t급 배가 다닐 수 있다. 공항별·국적별 쿼터 제한이 있는 항공편과는 달리 선박은 대규모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좋은 수단이다. 13억 명의 중국인을 배에 태워 서울의 중심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오세훈 표가 어딨고, 박원순 표가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