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이 낸 택배비 2500원, 이럴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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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취업 준비생 서모(26)씨는 얼마 전 한 유명 인터넷쇼핑몰에서 4만8000원짜리 바지를 구입했다. 하지만 실제 낸 돈은 5만 500원. 배송비 2500원을 더 내야 했기 때문이다. 서씨는 “대부분 쇼핑몰에서 배송비로 2500원을 요구한다”며 “택배 회사도 다양한데 왜 배송비는 똑같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씨와 같은 소비자들이 별생각 없이 낸 배송비 2500원은 실제 택배비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쇼핑몰에서 택배사 실제 배송비에 수수료 등 명목으로 마진을 붙여 받은 것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인터넷쇼핑몰이 소비자에게 받는 택배 한 건당 평균 배송비는 2500원이다. 하지만 이들 업체가 국내 5대 택배사에 지불하는 평균 배송비는 1900원. 택배 한 건당 600원가량을 인터넷쇼핑몰이 챙긴 셈이다. 한 이불 전문 인터넷쇼핑몰에선 택배사에 1795원을 내고 소비자에게 3000원의 배송비(건당 마진 약 1200원)를 받기도 했다. 지난달 인터넷쇼핑몰을 창업한 김모(22)씨는 “우리처럼 택배 물량이 적은 신생 쇼핑몰에선 택배사에 2500원을 다 내야 한다”며 “만약 유명 쇼핑몰에서 소비자에게 택배비를 깎아주면 소규모 업체는 경쟁할 수 없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인터넷쇼핑몰 업계에선 이런 관행을 두고 ‘백마진’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대형 택배사 영업팀장 이모(38)씨는 “지난달에도 한 인터넷쇼핑몰에서 다른 택배사는 더 싸게 해준다며 건당 1700원 하던 배송비를 1600원으로 깎아달라고 요구했다”며 “쇼핑몰 업계에선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배송비를 깎아 백마진을 챙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민영(아태물류학부) 인하대 교수는 “인터넷쇼핑몰에서 마이너스 단가를 요구해도 택배사에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결국 택배사의 서비스 품질이 낮아져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인터넷쇼핑몰 업계에 백마진이 만연한 데는 17곳이 넘는 택배사의 치열한 경쟁이 한몫했다. 일본의 경우 마토운수·사가와규빈·일본우정·일본통운 등 4개 택배사가 전체 시장의 91.5%를 차지하고 있다. 박찬석 미래물류컨설팅 대표는 “국내 물동량에 비해 택배사 숫자가 많다”며 “인터넷쇼핑몰에서 이를 악용해 백마진을 챙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팔루스·키작남 등 유명 인터넷쇼핑몰에 백마진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지만 “연락을 주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배명순 한국통합물류협회 사무국장은 “백마진은 소비자를 속이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가격경쟁을 부추겨 택배사에서 깎은 배송비만큼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백마진(Back Margin)=인터넷쇼핑몰이 택배비로 소비자에게서 받은 돈에서 택배사에 지불하는 실제 운임을 뺀 차액. ‘되돌려 받는 차익’이라는 의미에서 ‘백마진’으로 불린다. 통상 거래 물량이 많은 유명 인터넷쇼핑몰일수록 택배사에 지불하는 택배운임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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