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흔든 '독수리 5형제', 퇴임후 뭐하나 보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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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56)·박시환(59)·김지형(54)·이홍훈(66)·전수안(60).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진보적 색채의 대법관들이다. 이들에겐 ‘독수리 오형제’란 별칭이 따라 다닌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만화영화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별명엔 이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하나는 이들 진보 컬러의 대법관들이 법과 정의를 지켜줬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보수 일색의 대법원을 바꿔놓기를 기대한 측면도 있다. 또 다른 코드는 이들에 대한 비아냥 섞인 우려다. 대한민국 최고 법관인 대법원에서 이들 5명이 뭉쳐 “소수의견을 빙자해 일반 법 감정에 배치되는 판결을 일삼을지 모른다”는 견제심리다. 이들 5명 중 4명은 이미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7월 10일이면 ‘마지막 독수리’인 전수안 대법관이 정년을 맞는다. 이들 5명 ‘독수리들’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진보적으로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남성-연공서열 중심의 폐쇄된 대법원 문화를 바꿨다” 는 시각이 교차한다.

파격적인 임명 효과
이들 5명은 대법관 임명 자체가 파격으로 읽혔다. 가장 먼저 대법관이 된 김영란 대법관 땐 법조계가 크게 술렁였을 정도다. 2004년 7월 김영란 판사가 대법관으로 제청되자 강병섭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사표를 던졌다. “대법관 제청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댔지만 속내는 유력한 대법관 후보였다가 제청에서 탈락한 데 대한 반감이었다. 당시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이던 40대 김 대법관은 강병섭 원장에 비해 기수에서 8년이나 후배였다. 김 대법관은 선배들보다 먼저 대법관에 오르며 그간 여성 법관들에게 닫혀 있던 대법원의 문을 처음 열어젖혔다. 기수, 나이, 여성이라는 기존 장벽을 뛰어넘는 파격이었다.

이듬해인 2005년 11월 대법원에 합류한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전주고를 졸업한 김지형 대법관은 원광대 법대를 졸업한 ‘비(非)서울대’ 출신의 40대 법관. 서울대 일색의 ‘대법관 순혈주의’를 깨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시환 대법관은 진보적 성향의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초대 회장으로, 대법원 입성 자체가 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1993년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는 ‘제3차 사법파동’ 당시 판사회의를 주도하면서 제도 개선 건의를 대법원장에게 제출했던 ‘반항아’였다. 이 일을 계기로 법복까지 벗었던 그가 2년 만에 대법원에 합류하자, 보수 진영에서는 “대법관마저 정권 눈치를 보는 코드 인사”란 비판이 크게 일었다. 2006년 7월엔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법원 내 재야인사’로 불리던 이홍훈 대법관과 여성인 전수안 대법관이 임명되면서 기존의 ‘서울대-연공서열-남성-보수’라는 철옹성 같던 사법부를 흔들었다. 법조계에서는 “이들이 아니었다면 지난해 신임 대법관으로 비서울대에 여성, 개인적으로는 이혼이라는 경력을 가진 박보영 대법관이 탄생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박보영 대법관은 한양대 출신이다.

‘소수 목소리’로 끝난 실험
‘본업’인 대법 판결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 대법관이 공통으로 재임했던 기간은 4년1개월. 그 사이 이뤄진 전원합의체 판결은 모두 65건이었다. 5명의 대법관이 한목소리로 진보적인 의견을 낸 것은 3건에 불과했다.

전원합의체는 재판장인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이 모두 참여해 판결을 내린다. 13명 중 7명 이상의 의견이 같아야 ‘다수 의견’으로 채택되며 판례가 된다. 판례를 뒤집기엔 수적 열세였지만 성향적으론 5명이 비슷한 의견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박시환 대법관 퇴임을 계기로 우리법연구회 소속 홍기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박 대법관의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에 대해 같은 뜻을 표시한 대법관은 ‘전수안(19건)-김지형(18건)-김영란(10건)-이홍훈(10건)’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양창수 전 대법관과 차한성(현 법원행정처장) 대법관은 박 대법관과 뜻이 같은 사건이 1건에 불과했다.

2007년 3월 대법원은 전국공무원노조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공무원 승진을 취소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놓고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을 울산 북구청장이 승진시키자, 광역단체장인 울산광역시장이 승진을 취소한 것이 문제가 됐다. 승진 취소를 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과는 반대로 이들 5명의 대법관은 승진 취소는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같은 해 5월 이뤄진 상지대 임시이사 관련 판결에서도 이들은 소수의견으로 사학을 견제해야 한다며 뭉쳤다.

2007년 7월엔 남북공동실천연대(실천연대)가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이적단체인지를 놓고 이들이 또 뭉쳤다. 당시 대법원은 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했지만 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 대법관은 “이적단체로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박 대법관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다”며 “검사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김영란 대법관은 “이적단체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이적 표현물을 소지했다고 해서 이적행위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또 다른 의견을 냈다.
박시환·김영란 대법관은 청문회 때는 사형제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살인죄로 기소된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의 한 판사는 “5명의 대법관이 대법원 판례를 크게 바꾸지는 못했지만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퇴임 후 개업 않는 선례 만들어
5명의 대법관들은 퇴임 후 ‘전관예우’의 틀을 깨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사람을 빼고는 퇴임 후 당연시되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인물은 조무제(동아대 교수) 전 대법관, 배기원(영남대 교수) 전 대법관 등 3명에 불과했다. 독수리 오형제 중 가장 먼저 법복을 벗은 김영란 대법관은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에는 서강대 로스쿨 석좌교수도 겸하고 있다. 이후 박시환 대법관이 인하대 로스쿨로, 김지형 대법관이 원광대 로스쿨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5월 퇴임한 이홍훈 대법관은 한양대 로스쿨로 갔다가 최근 법무법인 화우에 들어갔다. 독수리 오형제 가운데선 유일한 ‘현직’ 변호사인 셈이다. 전수안 대법관은 7월 물러나는 3명의 대법관과 함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해 나승철 변호사는 “변호사 개업 대신 학교나 공직으로 가는 것은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다. 전관예우 타파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독수리 오형제’ 대법관들이 모두 물러나게 되면서 곧 4명의 신임 대법관을 추천해야 하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수-진보 간의 균형과 다양성 확보’라는 대법원 구성의 명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한 대목이다. 양 대법원장은 다음 달 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로부터 3배수에 달하는 10여 명의 후보자 명단을 건네받게 된다. 이 중 4명만이 제청되며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임명장이 수여된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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