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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가는 실리콘밸리 거부들…돈? 꿈의 도구일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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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중학교 1학년 가을께였다. 어스름 녘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다 분명 느꼈다. 지구가 돌고 있었다. 어지럼증이 일 만큼 빠른 속도였다. 한창 예민한 때였다. 나와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실제보다 열 배는 강렬하게 육박하는. 소리도, 냄새도, 감정들도 모두 지나치게 달뜨고 선명해 감당이 잘 안 됐다. 그 와중에 느껴버린 거다. 지구가 정말 도는구나.

 착각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때 그 기분은 꽤 오랫동안 나를 미묘하게 간지럽혔다. 무한히 거대한 존재의 고리에서 나는 한 점(點)임을, 그렇기에 더더욱 ‘살아있다’는 의미가 절박한 실존으로 다가왔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사춘기 적 누구나 한번쯤은 ‘우주와 나’에 대해 고민하리라. 꿈도 꿀 것이다. 미국 TV 시리즈 ‘스타트렉’에 영향받은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우주연합 함선 엔터프라이즈호와 승무원들의 모험담을 그린 공상과학물이다. 1966년부터 2005년까지 총 30개 시즌, 726편이 방영됐다. 영화도 11편이나 만들어졌다. 이 시리즈 광팬들을 ‘트레키(Trekkie)’라 부른다.

 이 트레키들이 인류 우주 개척사에 새 장을 열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22일 새벽(현지시간) 세계 최초의 민간 상업로켓 팰컨 9호가 발사됐다. 이 로켓엔 역시 세계 최초 민간 우주선인 ‘드래건’이 실려 있다. 드래건이 국제 우주정거장 도킹에 성공하면 본격적인 우주 비즈니스 시대가 열린다. 지휘자는 벤처기업 스페이스X의 엘튼 머스트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인터넷 결제서비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다. 2002년 이 회사를 이베이에 팔아 거부가 됐다. 그는 이를 지키고 향유하는 대신 스페이스X를 창업했다. 당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은 공상과학소설을 읽고 스타트렉을 보며 자랐다. 우리가 우주 개발에 강하게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마존닷컴 창업자 제프 베저스도 2000년 우주왕복선 개발사인 블루 오리진을 창업했다. 지난 3월 그는 “인류 최초 달 착륙선인 아폴로 11호 엔진의 대서양 추락 위치를 파악했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 또한 2004년 우주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그의 회사 ‘스트라토 론치’는 초대형 비행기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형태의 우주왕복선을 개발 중이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 공동창업자와 에릭 슈밋 회장은 우주광물 개발사 플래니터리 리소시즈의 대주주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민간 우주산업 시대를 선언했다. 항공우주 분야에도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가 정신이란 숱한 제약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혁신적 사고와 행동으로 새 가치를 창조하는 행동이다. 이야말로 실리콘밸리 거부들의 전매특허 아닌가. 돈보다 꿈에 미친 이들이 세계를, 우주를 바꾼다.

글=이나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