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복지제도 좋아도 무작정 베끼면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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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빈 방한을 앞두고 있는 스웨덴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왼쪽)과 실비아 왕비가 1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왕궁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에 응했다.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네 살 때 왕세자가 된 스웨덴 왕자에게 고고학자였던 할아버지는 이따금씩 먼 동양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할아버지는 직접 유적 발굴에 참여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유물과 비석들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수십년이 지나 이 왕자는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그는 오는 29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는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이다.

 1959년 양국 수교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국빈방문을 앞두고 구스타프 국왕과 실비아 왕비를 16일(현지시간) 스웨덴 왕궁에서 만났다. 구스타프 국왕은 “스웨덴과 한국이 함께 협력하고 개발할 분야가 매우 많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양국의 공통 관심사에 대해 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한국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왕이었던 구스타프 6세는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고고학자로, 왕세자였던 26년 한국을 방문해 경주 고분의 금관 발굴에 참여했다. 구스타프 국왕이 삼성 휴대전화 등 한국 제품을 애용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의 왕족 접견실에는 LG전자의 LCD TV가 설치되기도 했었다. 이번 국빈방문을 앞두고 구스타프 국왕 부부는 이례적으로 직접 대사관저를 방문해 엄석정 주 스웨덴대사 부부와 만찬을 함께하는 등 왕실 차원에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구스타프 국왕은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 논쟁’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스웨덴의 사회복지 제도는 정치권의 아주 오랜 토론과 개발, 공동체와의 협력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그 나라의 문화에 맞아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한 나라의 것을 베껴 다른 나라에 붙일 수 없다는 것이 내 철학”이라며 “다만 선택해서 그 사회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뒷받침할 경제적 여력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웨덴 왕실은 정치적 실권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스웨덴 국민이 중시하는 가치를 직접 실천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친환경을 중시하는 구스타프 국왕은 집무실인 왕궁과 스톡홀름 시내의 거처를 이동할 때 직접 볼보 전기자동차를 운전한다. 실비아 왕비는 “국왕은 내가 집안일을 하는 데 있어 (환경을 보호하는지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 항상 뒤에 서서 ‘당신 유리랑 플라스틱, 배터리 같은 다른 종류 쓰레기들을 잘 분리하고 있어?’라고 묻곤 한다”고 웃었다.

 실비아 왕비는 장애인과 아동·노인 복지 향상을 위해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99년에는 세계아동재단(WCF) 설립을 주도, 15개국에서 아동의 생활여건 개선사업을 돕고 있다. 장녀이자 왕위 계승자인 빅토리아 왕세녀는 그 자체로 양성평등의 상징이다. 스웨덴 의회가 빅토리아 왕세녀가 태어난 지 3년 만인 80년 법을 바꿔 성별과 상관없이 첫째 자녀가 왕위를 승계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국왕은 “왕실이 객관성을 유지하고, 정치권과 연계를 갖지 않기 때문에 국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톡홀름=글·사진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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