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중국의 미래 30년 이끌 키워드는 무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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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중국에선 물길이 곧으면 강(江), 구불구불하면 하(河)라 한다. 창장(長江)과 황허(黃河)의 구별은 물길의 생김새에 따른 것이다. 황허의 흐름이 이리저리 굽이치다 보니 ‘하동삼십년(河東三十年) 하서삼십년(河西三十年)’이란 말이 나왔다. 황허의 동쪽에 있던 마을이 30년을 지나고 보니 황허의 서쪽에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변화무쌍한 인간사를 비유할 때 쓴다.

 건국 60년을 지난 중국의 현재가 이 말을 떠올리게 한다. 30년을 주기로 역사의 변곡점을 그려온 까닭이다. 1949년 건국 이후 30년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였다. 이 시기를 특징짓는 한마디는 ‘계급투쟁’이다. 무산계급과 유산계급의 끊임없는 투쟁이 강조됐다. 결과는 문화대혁명의 참담함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30년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다.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의 치세(治世)까지를 포함하는 이 시기 키워드는 ‘경제발전’이다.


[일러스트=박용석]

 
덩은 마오가 쳐놓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고 싶었다. 사상해방(思想解放)을 외치고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창한 이유다. 종합 국력 증진에, 생산력 발전에, 인민의 생활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수단을 써도 좋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장(市場)’ 개념의 도입은 그래서 가능했다. 결과는 ‘G2(미국과 중국) 시대’라는 말의 유행에서 보이듯 대성공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아직 갈 길은 먼데 경제발전에만 매진해온 후유증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2020 비전과 2050 청사진을 갖고 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을 앞둔 2020년엔 전면적 소강(小康)사회를 달성하겠다고 한다. 인민이 배불리 먹고 문화생활도 즐기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2049년)에 즈음한 2050년의 목표는 부강·민주·문명의 현대화 국가 건설이다.

 중국이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보인다. 중국 지식계는 지난해 최대 사건으로 광둥(廣東)성 우칸(烏坎)사태를 꼽는다. 농민의 땅을 촌 관리가 배짱 좋게 팔아먹은 데서 비롯된 시위다. 유사한 시위가 한 해 18만 건 이상 벌어진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낙마 사건은 권력이 통제받지 않을 때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택연금을 뚫고 미국 대사관으로 뛰어든 시각장애 변호사 천광청(陳光誠) 사건은 낙후된 중국 인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이 모두 경제발전 일변도 정책이 낳은 부작용이다. 미국 사학자 조너선 스펜스는 이제 중국의 문제는 부(富)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넘쳐서라고 말한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개혁만이 살길이라는 데 많은 중국인이 동의한다. 상류를 지나 중류에 도착한 개혁이 암초에 부닥쳤는데 새로운 비전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암초를 돌파하기 위한 각종 개혁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좌파적 입장에서 제기된 게 보시라이의 ‘충칭 모델’이다. 이는 정치적으론 정부의 역할을, 경제적으론 분배를, 사회적으론 민생을 강조한다.

 우파적 성격을 띠는 건 보시라이와 라이벌 관계인 왕양(汪洋) 광둥성 당서기의 ‘광둥 모델’이다. 이는 정치적으론 사상개혁과 법치를, 경제적으론 성장을, 사회적으론 민의가 소통되는 민주주의를 역설한다. 최근 중국 지식계에선 좌·우파 모두를 뛰어넘는 모델로 ‘신민주주의론(新民主主義論)’이 제기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공산당 집권을 전제로 그 아래에 각 파벌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언론과 사상이 자유와 독립을 누릴 수 있다고 외친다.

 이 같은 여러 개혁안의 배경에 공통적으로 깔린 인식이 있다. 중국도 이젠 빵만으로는 살 수 없으며, 경제발전을 넘어 정치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시라이 사건이 한창이던 2월 23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칼럼 하나를 실었다. ‘불완전한 개혁을 할지언정 개혁 자체를 하지 않아 생기는 위기를 맞아선 안 된다(寧要微詞 不要危機)’라는 글에서 개혁이 초래할 ‘불안정’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제까지 중국은 ‘안정이 모든 걸 압도한다(穩定壓倒一切)’는 구호의 틀 속에서 살아왔다. 경제발전을 위해 정치·사회 각 부문은 무조건 안정돼야 한다며, ‘안정’을 국가 통제의 무기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이젠 비록 혼란이 야기될 수 있지만 정치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변하고 있다. 인민일보 칼럼은 이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인민일보는 14일에도 1면에 ‘정치체제 개혁이 중대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글을 발표했다.

 지난 3월 후진타오 주석의 브레인으로 중국의 정치개혁 방안을 연구하는 위커핑(兪可平) 중앙편역국 부국장이 책을 냈다. 『민심을 경외하라(敬畏民意)』는 제목의 책에서 위커핑은 ‘민주주의는 완전무결하지는 않지만 인류가 고안한 제도 중 가장 낫다’고 말했다. 마오쩌둥 30년의 계급투쟁과 덩샤오핑 30년의 경제발전에 이어 시진핑이 문을 열 중국의 향후 30년 키워드는 무엇이 될까.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정치개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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