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피난처 카리브 연안국 매서운 '대륙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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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 기후인 카리브해 지역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 각국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피난처(tax-haven)로 삼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해 서방 선진국들이 감시와 압박을 대폭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의 친목단체격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카리브해에 밀집한 섬나라들이 '검은 돈의 세탁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OECD는 8~9일 바베이도스에서 대표자 회의를 열고 이들 나라에 대해 조세개혁을 강력히 촉구하기로 했다. 다음달 15~16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또 유사한 회의를 열 계획이다.

OECD는 이들 국가에 대해 우선 올해 말까지 탈세 방지와 돈세탁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 궁지에 몰리는 조세피난처〓세계 3대 조세피난처로는 카리브해 연안과 말레이시아 북동부.아일랜드 지역이 꼽힌다.

이중 OECD의 블랙리스트 35개 국가 중 절반이 넘는 18개가 카리브해 연안에 몰려 있다.

OECD가 지난해 6월 35개 국가의 명단을 공개하고 전면전을 선포한 이후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명단공개 후 국제적 감시가 강화되면서 먼저 미국 자본들이 이들 지역을 떠나고 있다. 세인트 빈센트의 경우 지난해 11월 이후 등록기업수가 20% 가량 줄었으며, 안티과에서는 78개였던 은행이 지금은 18개로 급감했다.

그레나다의 케이스 미첼 총리는 "서방국가들의 부당한 간섭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 조세회피 지역은 그동안 조세감면.비실명 거래 등을 내세워 국제자본을 유혹, 호황을 누려왔다. 특히 1990년대 들어 성장을 거듭해온 미국 기업들이 카리브해 지역에 대거 유령회사를 차렸다.

미 정부는 이로 인해 세수(稅收) 손실이 5백억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시아 자본의 경우 주로 말레이시아 북동부 섬을 조세피난처로 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일부 조세피난처들은 국제적 압력에 굴복, 개혁조치를 내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카리브해 바하마의 경우 최근 10만개의 외국회사에 대해 비실명 소유를 금지하기로 결정했으며, 바베이도스도 세율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버뮤다 등 8개 지역도 기존의 조세혜택을 일부 줄인다는 계획을 이미 밝힌 바 있다.

◇ 고삐 늦추지 않는 서방선진국〓하지만 선진국들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연간 최소 5천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탈세 자금에다 콜롬비아 마약조직 등의 검은 돈이 몰리는 이들 지역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OECD는 해당 국가들로 하여금 올 연말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게 하고 2003년까지는 조세문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협조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도록 할 방침이다.

2005년에는 조세에 관한 정보를 완전 공개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OECD는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이들 국가를 압박하고 있다.

◇ 반발하는 조세피난처〓해당 국가들은 이런 압력이 과세권 침해인데다, 이대로 될 경우 자신들의 국내총생산(GDP)이 현재의 40% 선으로 격감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OECD의 블랙리스트도 회원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지브롤터.버진아일랜드 군도 등은 영국의 반대로, 벨리즈.세인트루시아 제도 등은 캐나다의 반대로 블랙리스트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카리브 개발은행 총재인 네빌 니컬러스는 "미국의 마이애미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돈세탁 지역" 이라며 "조세정의를 위한 노력에는 협조하겠지만 서방국가들의 부당한 간섭에는 굴하지 않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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